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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아트, 영생의 꿈인가 죽음의 서사인가
TECHM REPORT 테크 품은 예술
[테크M=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영생(永生)! 인류 탄생 이래 변하지 않는,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인간 바람 중 하나다. 이 열망은 생명공학 발전을 촉진했고, 덕분에 인류는 100세 시대라는 가시적 성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특히 21세기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은 컴퓨터공학과 통계학, 물리학과 결합하면서 생명공학 분야에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기존 생명공학이 신체 기형이나 손상을 치료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 줄기세포와 조직 배양, 유전자 같은 연구로 다양한 인공기관을 개발하는 단계를 맞고 있다. 이 성과를 더 확장하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신체를 완전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 종착점은 물론 영원히 사는 꿈을 구현하는 데 있다. 기계 지능이 조만간 사람 지능을 뛰어넘을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을 비롯한 특이점주의자(Singularitarian)들의 연구가 향하는 최종 목적지도 영생이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전망과 기대는 다른 한편으로 불안과 신경증, 숱한 의구심을 낳는다. 영생은 애초부터 이룰 수 없는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게 아닌가. 과연 영생이 이루는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더 근본적으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을 사람이 제멋대로 조작하는 것이 윤리적이고 옳은가. 이처럼 과학기술 중 생명공학만큼 끊임없는 회의와 수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분야 또한 찾기 힘들다. 더욱이 기후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 앞에 무기력한 우리들이고 보면 영생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가혹했던 무더위에 지쳐 호들갑을 떨어야 했던 지난 여름을 돌아보더라도 대자연 앞에서 영생이나 생명 연장 시도는 그야말로 ‘주제넘은’ 짓일 수 있다.
예술적 상상력이 생명공학을 만나다
생명공학 발전에 따른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먼저 예민하게 포착해 물신화한 생명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대안 모색을 촉구하는 예술이 바이오아트(BioArt)다. ‘뉴미디어 아트’에 속하는 바이오아트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확장한 미술 형식으로 비교적 최근에 생긴 장르다. 주로 생명공학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했다. 또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루거나 마치 생체실험과 비슷한 방식으로 창작하는 예술로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을 활용한 ‘비물질적’ 예술과 달리 물질을 강조하는 예술 중 하나다.
바이오아트는 비교적 최근에 활기를 띠고 있는 장르다. 하지만 최초 전시는 1936년에 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스타이켄 참제비고깔’전이다. 세계적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은 자신이 26년간 기른 참제비고깔을 통해 처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미술관에 전시하는 사례를 남겼다. 지금이야 살아있는 동식물을 전시하는 사례가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생명체 전시’에 대한 수많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는 살아있는 작품과 예술 간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와 함께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또 다른 대표 바이오아트 전시로는 2000년 9월 뉴욕 엑시타트(ExitArt) 화랑에서 열린 ‘낙원을 향하여: 유전자 혁명 그리기(Paradise Now: Picturing the Genetic Revolution)’가 있다. 게놈 프로젝트와 관련된 유전자 치료와 복제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유전공학 문제를 다뤘던 이 전시에는 미국과 유럽 바이오 아티스트 39명이 참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대전시립미술관이 개최한 대전비엔날레에서 바이오아트가 전시됐다.
바이오아트는 크게 생명공학 자체를 예술 주제로 한 것과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해 예술가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소위 ‘바이오토픽 바이오아트(Biotopic Bioart)’라 부른다. 유전공학 같은 각종 바이오 기술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문제나 윤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표현방식은 전통적인 회화와 사진은 물론 비디오와 설치, 퍼포먼스 같이 다양하다. 후자는 ‘바이오미디어 바이오아트(Biomedia Bioart)’로 예술가들이 살아있는 세포나 조직을 이용하는 생물학적 실험을 실행하고 그 자체가 미술작품이 된다(전혜숙, 2012,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바이오아트와 생명개입).
한편 바이오아트는 다루는 생명공학 분야에 따라 DNA를 활용한 예술, 유전자 변형 예술, 조직공학 예술, 신체 또는 생명 자체를 다룬 예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더 폭넓게 기술적 보철(사이보그) 예술도 여기에 포함된다 할 수 있다.
형광토끼 알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최초 예술작품
먼저 DNA를 활용한 대표 예술 사례로 ‘스트레인저 비전스(Stranger Visions)’가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헤더 듀이해그보그(Heather Dewey-Hagborg)는 어느 날 벽에 걸린 액자 틈에 끼어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대체 누구 것일까 하는 다소 엉뚱한 호기심을 품는다. DNA분석으로 그 주인공을 묘사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담배꽁초를 줍고, 화장실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 머리카락 등을 모았다. 이런 물질에서 DNA를 원심분리기로 분리한 뒤 피부색이나 눈 색깔, 성(性) 등을 분석했다. 이를 이미지로 조합해 3D 프린터로 출력한 작품이 바로 ‘스트레인저 비전스’다. CCTV 감시를 넘어 생물학 차원에서 감시할 수도 있다는 다소 섬뜩할 수 있는 경고인 셈이다.
유전자 분석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은 이른바 유전자 변형예술 또는 트랜스제닉아트(transgenic art)다. 바이오아트라는 용어를 정립한 인물로 알려진 브라질 출신 카츠(Eduardo Kac)는 2000년 유전자를 변형한 토끼를 주제로 한 작품 ‘GFP 버니(GFP Bunny)’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그는 흰색 토끼에 발광 해파리 유전자를 주입해 유전자 변형을 시도했다. 이 토끼는 마치 해파리처럼 어두운 곳에서 자외선을 받으면 녹색 빛을 발산하는 형광토끼로 재탄생하며 ‘알바(Alba)’라고 이름 붙여졌다. 유전자 색채정보가 왜곡돼 체내 색소가 결핍된 알비노 토끼인 ‘알바’는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최초 예술작품으로 불린다.
카츠는 유전자 변형예술 대상을 동물 뿐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확대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9년 ‘수수께끼의 자연사(Natural History of Enigma)’라는 작품에서 그는 꽃과 자신의 DNA를 공유한다. 자기 혈액에서 면역유전자를 추출해 이를 피튜니아꽃에 이식한 것이다. 피튜니아꽃은 식물세포 원형질과 동물세포 원형질이 융합된 세포 플랜티멀(Plantimal) 기술을 통해 카츠의 붉은 피부색을 연상시키는 빨간 잎맥을 가진 새로운 종(species)이 됐다. 유사 사례로 로라 신티(Laura Cinti)는 사람 유전자를 선인장에 주입해 선인장 가시가 머리카락처럼 변하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헌터 콜(Hunter Cole)은 빛을 내는 박테리아에 자기 DNA를 집어넣은 뒤 성장과 소멸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한편 예술가 스스로 실험용 동물이 되기도 한다. 2011년 프랑스 마리옹 라발 장테트(Marion Laval-jeantet)는 ‘말이 내 안에 살기를’이라는 작품에서 말 혈장을 수혈 받고, 이로 인해 신체 내분비계와 신경계가 변화를 일으키는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자기 피부와 세포를 예술로 표현
조직 공학(Tissue Engineering)을 활용한 바이오 아티스트로는 호주 행위예술가 스텔락(Stelarc)이 손꼽힌다. 그는 1970년대부터 ‘사람 신체는 고루하다(The human body is obsolete)’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자기 신체와 기계장치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발표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에는 자기 팔에 귀를 이식한 ‘팔위의 귀(Ear on Arm)’ 같은 조직공학을 이용한 작품으로 세계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나아가 추가된 귀에 실제로 마이크를 장착해 청각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당시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뒤 심각한 염증을 일으켰고, 스텔락은 강력한 항생제를 세달 동안이나 복용했다고 한다.
조직공학 발전은 세포 조직 자체를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했다. 마티직(Reiner Maria Matysik) ‘인간의 저편(2010)’은 조직 세포를 배양해 전시를 위한 ‘살아 있는 조각(Living sculpture)’을 시도한 작품이다. 자기 피부와 혈액, 연골 조직을 일부 떼어내 기초적인 신진대사와 세포 호흡이 가능한 실험실에서 배양한 마티직은 조직을 미리 만들어 놓은 틀을 따라 자라게 한 뒤 그 모습을 베를린에서 전시했다.
신체 또는 생명 그 자체가 작품 소재가 되는 바이오아트도 있다. 사람 피부로 제작한 성조기로 논란을 일으킨 크래스노우(Andrew Krasnow)가 1996년에 만든 ‘48성조기’는 너무나 유명한 사례다. 헬렌 채드윅은 사람 배아 발전 단계를 사진으로 찍어 천체 행성을 표현했다.
로라 신티(Laura Cinti)는 장미를 우주 환경에 두는 실험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화성과 유사한 영하 60~130도, 지구 기압 1%에 불과한 환경을 갖춘 모의실험실을 만들고, 여기에 장미를 두고 6시간 동안 관찰하는 이벤트였다. 바이오아트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수잔 앵커(Suzanne Anker)는 화초를 활용한 조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농업(Astroculture)’을 선보였다. 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LED 불빛으로 식물이 자라게 했다. 우주에서 식물 배양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상상력을 예술로 구현한 것이다.
생명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윤리문제
바이오아트는 재현(mimesis)하는 역사에서 벗어나 예술가 스스로 생명을 다루는 창조자로 위치를 확고히 하는 예술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때 생명이 지닌 미적 가능성은 바이오아트에서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하지만 생명 그 자체를 소재로 한다는 측면에서 필연적으로 윤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바이오아트가 생명을 유희 소재로 독려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바이오아티스트 제레미옌코(Natalie Jeremijenko)는 ‘창조적 바이오테크놀로지: 사용설명서’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실험용 쥐 구입방법부터 피부 배양법 같이 바이오테크 활용법을 상세히 소개해 누구나 쉽고 자유롭게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즐길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신승철, 2013, 생명윤리의 저편 바이오 아트의 비판적 실천).
하지만 바이오아트가 지닌 핵심은 생활에 파고든 생명공학 발전상을 관람자로 하여금 직접 만지고 느끼고 상상하게 하는데 있다. 무엇보다 바이오아트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공감이 쉽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은 이치로 따져서는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어려운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시키는 일이다. 대개 정말로 예술적 인상을 받으면 모두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다만 표현을 못했던 것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아트는 작품설명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톨스토이 예술론에 근접한 장르다. 바이오아트가 생명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영생의 꿈을 그리고 있는지, 아니면 유전자 조작이나 변형이 가져다줄지 모르는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죽음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지는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볼 일이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8호(2018년 12월)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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