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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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TH SOTRY1] 누구나 자기 아이디어로 제품 만드는 1인 창작 시대
DIY, 오픈소스, 제조장비 접근성이 가져온 메이커 문화
[테크M=오영주 N15 메이커사업본부장] 현대인이 가진 최대 취미이자 특기는 쇼핑이다. 구매 활동과 물품이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주말에 쇼핑몰이든 출퇴근길 스마트폰이든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이와 달리 자신이나 주변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사는 것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러 단계 작업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필요와 취향에 맞게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데서 기쁨을 찾는다. 이들을 ‘메이커(Maker)’라 부른다.
2006년에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있는 샌머테이오에서 메이커 페어(Maker Faire)를 개최했다. 메이커 페어는 메이커들이 모여서 직접 만든 것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메이커를 위한 축제다. 메이커 페어에 전시되는 제작물은 고도의 공학 설계와 프로그래밍이 적용된 것부터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든 것, 상용화가 가능한 것부터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실물 크기의 기린 로봇, 원목으로 만든 자전거 프레임, 3D프린팅한 장신구와 드레스,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떠오르는 수륙양용 자동차, 카드보드로 만든 익룡 모형, 재봉 완구가 그 예다.
낮아진 디지털 제조 진입장벽이 메이커운동 불 지펴
메이커 페어는 이제 45개국에서 연 220회 이상 열리고 있으며, 메이커 운동은 세계적으로 80만명이 참여하는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메이커 문화가 발전하고 확산된 데는 DIY문화와 오픈소스 플랫폼, 그리고 기술 발달로 인한 제조 장비 접근성 제고 같은 세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메이커 문화는 미국에서 DIY(Do-It-Yourself), 즉 다양한 물건을 직접 제작·수리·장식하는 활동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아파트를 제외한 미국 주택에는 차고나 지하실, 헛간처럼 다양한 작업을 벌일 수 있는 별도 공간이 있다. 또 인건비가 비싼 탓에 전문 기술자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직접 배워서 차를 고치거나 집을 꾸미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각종 공구와 재료를 살 수 있는 유통매장도 크게 조성돼 있다. 이러한 환경적 여건이 메이커 문화가 자생적으로 싹트는 자양분으로 작용한 것이다.
다음으로 오픈소스란 원작자 권리를 지키는 선에서 누구나 소스 코드를 열람하고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가리킨다. 하드웨어도 설계도와 회로도, 재료·도구, 제작 방법 등을 오픈소스로 공유할 수 있으며, 1970년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최초로 애플 컴퓨터를 구상한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 그 기원이다. 이들은 자신의 지적재산을 특허로 보호하기보다 오픈소스로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더 빠르게 혁신을 이루려했다. 이 같은 흐름은 인터넷 보급과 블로그, 유튜브 같은 미디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더 대중화됐다. 이제는 누구나 핵심 정보에 접근해서 직접 제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3D프린터와 아두이노 같은 프로토타입 제작 장비가 저렴해지면서 디지털 제조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도 메이커 운동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3D프린터와 아두이노 등장
3D프린터는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3차원(3-Dimensional, 3D) 공간에 설계한 도면을 따라 3차원 실물을 출력하는 기계다. 보급형 프린터로는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즉 압출적층조형 방식 프린터가 일반적인데 1989년 미국 스트라타시스(Stratasys)가 처음 개발했다. 3D모델링 파일이 프린터로 전송되면 이 데이터에 따라 프린터 노즐이 x, y, z 세개 축으로 움직이면서 스파게티처럼 생긴 필라멘트를 조금씩 녹여 한 층씩 쌓아 올린다.
잉크젯 프린터가 평면인 종이 위에 잉크를 분사해서 텍스트나 이미지를 인쇄하는 원리와 같다. 다만 이를 수직으로까지 쌓아 올림으로써 3차원 실물을 완성한다. FDM 방식 외에도 액체 수지나 파우더에 레이저를 쏘아 한 층씩 굳혀서 전체를 조형해 내는 방식처럼 다양한 3D프린팅 기술이 존재하는데, 장비가 고가라 대부분 산업용으로 쓰인다.
아두이노(Arduino)는 초소형 컴퓨터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 보드와 오픈 소스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을 말한다. 아두이노에 감응 장치(Sensor)와 구동 장치(Actuator)를 연결하면 접촉과 거리, 소리 같은 외부 환경 정보를 읽어 들여 조명과 모터, 스피커 같은 장치를 제어할 수 있다.
개발 경험이 없는 사람도 디자인 작품이나 기계 제작에 활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작성과 업로드 과정을 단순화해 교육용으로도 많이 활용한다. 미국에서 개발한 아두이노 유사 제품인 영국의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가 개발 보드 저가화와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제품 회로도를 모두 오픈소스로 공개해 다른 브랜드에서 출시한 유사 제품도 많다.
오픈소스가 기술 정보의 민주화를 불러왔다면 3D프린터와 아두이노 등장은 제조 개인화를 촉진했다. 전통적으로 제조는 고도 기술과 고가 장비를 보유한 기업이나 일부 개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1~2억원을 호가하던 3D프린터가 이제 150달러(약 16만8000원) 제품이 나올 정도로 저렴해졌고, 아두이노 보드와 각종 부품에 안내 책자가 포함된 아두이노 스타터 키트는 70달러(약 7만8400원)면 살 수 있다.
또 이런 제품들은 다루기 쉽게 단순화돼 모델링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여러 차례 개선을 반복하며 학습하고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다. 다양한 메이커들이 작게는 스마트폰 케이스나 게임 캐릭터 피규어부터 어린이용 젓가락 보조기구, 주기적으로 식물에 물을 주는 화분, 움직임을 인식해 켜지는 침대밑 야간등, 사고로 뒷다리를 잃은 반려견을 위한 휠체어까지 개인의 취향과 필요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직접 구상하고 창작하는 메이커 교육
메이커 문화가 꽃피던 당시 미국은 금융업을 통한 경제성장 한계에 부딪혀 제조업 부활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오바마 정부는 메이커 운동에서 그 혁신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관련 분야의 기반을 마련하고 역량을 제고하고자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는데, 여기에는 STEM교육(과학·기술·공학·수학 융합 교육)과 메이커 교육 지원 확대 정책도 포함된다.
2009년 오바마 정부는 10년간 미국 학생의 STEM 분야 학업 성취도를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상승시키자는 ‘혁신을 위한 교육(Educate to Innovate)’ 캠페인을 시작하고 총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에 달하는 재정과 현물을 STEM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또한 사이언스 페어와 메이커 페어를 이례적으로 의회와 백악관 내에서 직접 개최해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메이커의 나라(Nation of Makers)’라는 이니셔티브를 도입하고 메이커 교육기관을 지원하는 같은 이름을 가진 비영리기구를 창립했다. 한편 6월 둘째 주를 ‘전국 메이킹 주간(National Week of Making)’으로 지정하며 메이커 문화와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에 힘을 쏟았다.
메이커 교육은 언어로 잘 정제된 지식을 읽고 듣기만 하던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손으로 만지고 조작하고 경험하며 지식을 습득하는 이른바 만들기를 통한 학습(Learning Through Making)을 지향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시모어 패퍼트(Seymour Papert)가 피아제의 이론을 발전시켜 정립한 구성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구성주의는 학습자가 주어진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지식 체계를 구성해 나가며, 특히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학습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진다는 이론이다.
매년 3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교육 전문 콘퍼런스 ‘SXSW EDU’에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한 교육 실험과 이로부터 얻은 통찰을 공유한다. 메이커 교육에 관한 세션도 상당수 있는데, 발표 사례에 따르면 미국 학교들은 교과 과정 내용과 연계한 메이킹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학생들이 그 범위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만들게 하는 방식으로 메이커 교육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문학 시간에 소설 작품을 읽은 뒤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크래치(Scratch)로 이 내용을 게임으로 재구성하거나, 사회 시간에 3D프린터를 이용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식이다. 나아가 결과물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며 학습 내용을 심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맞는 창의력과 문제해결력 개발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브라이트웍스(Brightworks)라는 학교는 아예 과목 구분을 없애고 프로젝트 기반의 메이커 교육 형태로 교과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이렇게 메이커 교육을 융합하려면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뒤따라 일반 학교는 별도로 메이커 수업 시간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학생들은 카드보드와 아두이노를 이용해 반려동물 먹이 배급기를 만들거나 3D프린터와 레이저 커터, 재봉틀을 사용해 핸드 퍼펫을 만들며 더 다양한 주제의 만들기를 할 수 있다. 또 움직이며 말하거나 소리나는 장난감을 해체한 뒤 내가 원하는 다른 동작이나 말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토이 해킹처럼 참신한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도 있다.
만들기를 통한 학습에서 그치지 않고 기업가정신 교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디지털하버재단은 학생들이 3D프린팅 대행 출력 서비스를 제공하며 실제 주문을 처리하고 수고비도 받아가는 방과후 인턴십 개념의 ‘3D프린트숍’을 운영한다. 실제 고객 수요에 대응하며 전문가로서 활약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의 한 교육 기관도 학생들이 개발한 공기청정기로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면서 학생들에게 제조업 창업의 경험을 선사한 바 있다.
메이커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은 수학과 공학, 과학 지식을 습득하고, 3D프린터와 아두이노 같은 다양한 기술 도구를 활용하며 디지털 소양을 키울 수 있다. 또 관찰과 공감, 문제 정의, 아이디어 발산, 프로토타입 제작, 테스트와 개선의 과정을 거치는 디자인생각하기를 연습하고, 21세기 역량으로 꼽히는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의사소통능력, 협업능력, 문제해결능력, 도전정신과 끈기 등을 종합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연습인 셈이다.
국내에도 메이커 문화의 잠재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메이커 스페이스 구축, 교육 커리큘럼 개발, 교원 양성, 연구기관 운영 같은 다양한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과 부산은 각각 2018년부터 초·중·고 전 교과에 메이커 교육을 도입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메이커는 다른 누군가가 만든 물건을 구매하기만 하는 소비자 또는 사용자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다. 능동적인 생산과 창작하는 메이커 문화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혁신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오영주
미국 컬럼비아 교육대학원 재학 당시인 2016년부터 3년 연속 SXSW EDU를 참관하고 교육 트렌드 리포트를 발행했다. 이후 커리큘럼 설계, 교육용 콘텐츠 개발, 창의교육 연구 등을 해왔으며 현재 N15 메이커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5호(2018년 9월)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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