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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M리포트] 자기공명영상, MRI 개발과 확산
ECONOMY 경영
[테크M=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대형병원에 가면 X선과 CT(컴퓨터단층촬영), 초음파 같은 다양한 진단용 영상장비를 만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자기공명영상(MRI)은 최첨단 고가 장비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조장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가 개발해 금성에서 생산한 2T(테슬라, 자기장 밀도 단위) MRI 기기를 1987년 서울대 병원에 처음 설치하고, 1988년부터 검진에 사용했다.
이후 다른 병원에서도 MRI 장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GE와 지멘스, 필립스 같은 외국 브랜드 MRI 장비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때 국산화를 시도했던 메디너스와 카이가 외국계 기업 공세에 도산하고, 아이솔테크놀로지가 히타치에 인수된 뒤 국산화는 요원해 보였다. 최근 국내 기업이 세계적인 마그네트 원천기술 보유사인 마그넥스 사이언티픽을 인수해 변화가 일고 있다.
핵물리학에서 시작해 화학과 의학으로 확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기술은 사람들에게 마술과 같은 신비함을 느끼게 했다. MRI 마술은 달라이 라마까지 감동시켰다. 신통력을 지닌 듯 사람 몸 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기술에 대해, 그는 현대 기술 진보가 이룩한 최고 작품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은 마술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여러 분야에서 쌓아온 연구를 융합한 것에 불과하다. 시작은 물리학이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1924년에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 이론을 주장했다. 원자핵이 회전(spin)할 때 자기장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이 이론은 이시도어 라비(Isidor Rabi) 같은 후속 연구자들이 진행한 실험으로 검증됐다. 또 원자핵이 특정 라디오주파수에 반응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950년대에 두 명의 물리학자,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에드워드 퍼셀(Edward Purcell)과 스탠포드대 펠릭스 블로흐(Felix Bloch)가 각각 독립적으로 핵자기공명에서 원자핵이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하는 원리를 발견했다. 이 둘은 이 공로로 195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 분야 연구는 물리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학과 의학 분야에서 이 현상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MRI 기기 역사가 비로소 시작된 셈이다.
아르메니아인이었던 레이몬드 다마디안(Raymond Damadian, 1936~)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직후 터키에서 인종 박해를 피해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뉴욕에 정착해 1936년 다마디안이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교육열에 힘입어 바이올린과 테니스에서 재능을 보였고, 이 분야로 진출하려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암으로 죽는 모습을 지켜본 뒤 암 치료 방법을 연구하겠다고 다짐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에 진학했다. 이후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 다운스테이트 메디컬 센터(Downstate Medical Center)에서 내과의로 근무한다.
그는 1969년에 한 학회에 참석해 프리먼 코프(Freeman Cope)라는 생화학자를 만났다. 그리고 피츠버그에 있는 NMR 측정 장비 회사를 알게 됐다. 당시까지는 NMR 장비는 주로 물리학자들이 사용했고 의사들에게 생소했다. 다마디안은 이 장비를 이용해서 암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암일까? 어린 시절 할머니 죽음이 미친 영향도 있었지만 1970년대에 암은 미국 사회의 커다란 화두이기도 했다. 당시 암은 불치병으로 간주됐다. 미국이 달 착륙에 성공한 직후 미국 사회는 다음으로 도전할 과학기술 의제가 필요했다. 닉슨 대통령은 암 극복을 이 과제로 선택했고, 1971년 국가암법(the National Cancer Act)에 서명했다. 미국에서 암 전쟁이 선포된 이후 국가 R&D 예산의 상당 부분이 암 연구에 배정됐고, 많은 연구자들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외과적 절개 없이 암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다마디안은 정상 세포와 암 세포의 수분 함량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는 NMR 장비를 이용해서 쥐의 암 세포와 정상 세포로 관찰했다. 그리고 두 세포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NMR로 확인했다. NMR을 이용하면 물 분자에 붙어 있는 수소 원자핵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두 세포가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한 데이터를 시각화함으로써 암세포가 존재함을 보일 수 있었다. 그는 이 결과를 1971년 사이언스지에 ‘핵자기공명에 의한 종양 탐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곧이어 1972년 NMR 전신 스캐너 특허를 미국 특허청에 출원했고, 1974년에 특허가 등록됐다.
MRI 기본 원리 찾은 다마디안,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돼
다마디안의 논문은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많은 과학자들이 다마디안의 방법을 재현하려고 시도했다. 레온 사르얀(Leon Saryan)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화학자 폴 로터버(Paul Lauterbur, 1929~2007)가 그의 실험실을 들러 이를 지켜봤다. 로터버는 NMR 장비로 측정된 결과 값을 다른 방식을 분석해서 암 세포와 정상 세포 사이의 차이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터버는 주 자기장 외에 2차 자기장을 만들어 더 정교한 수치를 얻고 이를 차트화해서 신체 내부의 생리학적 특성을 시각화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결과를 1973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방법은 데이터 시각화였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실물 영상 형태는 아니었다. NMR 기기는 본질적으로 측정 장비였을 뿐 X선 기기 같은 촬영 장비가 아니었다. 하지만 로터버는 데이터 시각화를 이용해 NMR 장비의 인터페이스를 크게 개선시킬 수 있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물리학자 피터 맨스필(Peter Mansfield, 1933~2017)가 NMR 장비를 이용해서 고체 원자핵 회절 현상을 연구했다. 그리고 측정 결과를 시각화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맨스필드와 동료 연구자 피터 그래널(Peter Grannell)은 1973년에 이 연구 결과를 물리학회지에 발표했다. 그 뒤 이들은 로터버가 자신들과 비슷한 연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세 사람의 연구로 현대 MRI 장비의 기본 원리가 정립됐다. 물론 진정한 공로자는 다마디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78년에 포나르(Fonar Corporation)를 설립해 NMR 장비를 생산했다. 2003년에 MRI 원리를 개발한 공로로 로터버와 맨스필드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고, 정작 최초 개발자인 다마디안이 배제됐다. 이로 인해 큰 논란이 발생했다. 다마디안 본인도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1970년대에 여러 연구소와 대학에서 실험실 차원에서 개량시킨 다양한 NMR 장비들을 개발했다. 이들은 측정 데이터를 수치로 보여주거나 도표 형태로 원시적인 시각화에 나섰다. 특히 흑백이 아니라 컬러 영상이 주였다. 3원색이나 무지개 색은 최초 개발자 집단이었던 화학자나 물리학자들에게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장비가 개선되는 과정에서 주사용자인 방사선과 의사들의 습관이 중요했다. 흑백으로 보여지는 X선 사진 판독에 익숙한 그들에게 색채 영상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결국 MRI 장비는 방사선과 의사들의 선호에 맞춰 흑백 영상으로 통일됐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착됐다.
또 1970년대 말 이후 반핵운동이 전개되면서 NMR에서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 첫 단어인 핵(Nuclear)이 빠지게 됐다. 의사 마굴리스(Alexdander Margulis)가 자기공명영상(Magnetc Resonance Imaging)이라는 이름을 제안하면서 이후 MRI로 호칭이 바뀌었다. 실제로 MRI 장비의 인터페이스가 측정·표시가 아니라 영상으로 바뀌고 있던 터였다.
‘최초 개발자 위험’ 덫 피하지 못한 포나르
MRI 사업화를 선도한 기업은 GE다. 보텀리(Paul A. Bottomley), 레딩턴(Rowland Redignton), 슈넥(John Schneck) 등이 개발에 참여했다. 그들은 1982년에 1.5T 마그넷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렇게 강한 자기장이 사람에게 얼마나 해를 끼칠지 알 수 없었다. 슈넥은 자신의 몸으로 실험하며 해를 끼치지 않음을 확인했다. 슈넥은 이 장비로 자신의 뇌를 스캔했는데, 이는 역사상 최초의 뇌 영상 셀카로 알려져 있다. 1983년 GE의 MRI 장비가 FDA 승인을 얻어 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GE는 브랜드명으로 브리보(Brivo)와 시그나(Signa)인 중저급 자기장 MRI 장비를 출시하며 시장을 선도해나갔다.
비슷한 시기에 MRI에 눈을 뜬 존슨앤존슨을 비롯한 독일 지멘스, 네덜란드 필립스, 일본 히타치 같은 세계 유수 기업들도 속속 MRI 사업에 진출했다. 미국에서 인구 1000명 당 검사 횟수인 MRI 활용률이 1983년 1명에 미치지 못했으나 2005년에는 100명에 달할 정도로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한편 이미 NMR 스캐너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다마디안은 이들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MRI를 개발했다고 맞받아쳤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배상금을 포나르에 지불했다. 그러나 GE는 끝까지 소송을 이어갔다. 1997년 6월 20일 미국 법원은 GE가 다마디안 특허 2개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GE는 배상금으로 1억 2870만달러(약 1441억 원)를 지불해야 했다.
혁신 벤처 포나르는 선행자의 우위(First Mover’s Advantage)가 아니라 오히려 최초 개발자의 위험이라는 덫을 피하지 못했다. 포나르는 의료 산업의 역사를 바꿀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지만 과실은 정작 뒤늦게 뛰어든 대기업들이 가져갔다. 사업 초기에 의사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해 개선 여지가 많았고 가격 경쟁력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시장 확산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FDA 승인이 1983년에야 이뤄졌다. 포나르는 1981년 나스닥에 상장했지만 사업은 부진했다. 상장 이후 2년간 주가가 15달러까지 올라간 것을 빼면 줄곧 하락했고, GE에 승소한 뒤에도 주가가 3~4달러를 맴돌았다.
반면 GE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개발된 제품의 장단점들을 반영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빠르게 내놓을 수 있었다. 더구나 방대한 병원 영업망과 막대한 자금력, 그리고 광고력을 갖추고 있었다.
포나르는 특허침해 배상금으로 기울어가던 사업을 재편해 연매출 8000만달러(약 896억원), 종업원 500명 규모의 MRI 중견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점유율은 낮은 편이다. 기술력을 지닌 탁월한 발명가가 막상 경영에 들어갔을 때 맞이하는 장벽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 같아 유감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65호(2018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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