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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스타 ‘인면조’와 한국 키네틱 아트의 가능성
TECHM REPORT 테크 품은 예술
[테크M=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평창동계올림픽은 끝났지만 드론, 미디어 파사드 등 첨단기술과 어우러진 화려한 개·폐막식의 여운은 여전히 남는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를 이어가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인면조(人面鳥)’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비호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생경한 느낌은 호기심으로, 나아가 호감으로 반전되는 양상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묘한 매력도 있거니와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배경도 우리의 자긍심을 일깨운다. 물론 외국 사람들의 반응도 뜨겁다.
끊임없는 움직임이 선사하는 매력
인면조는 다른 마스코트들과 함께 ‘인형’, ‘퍼핏’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구동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인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키네틱 아트는 한마디로 움직이는 예술작품이다.
키네틱은 움직임(Movement)을 뜻하는 그리스어 키네시스(Kinesis)에서 따온 용어다. 얼핏 옵아트와 비슷해 보여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키네틱 아트는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인다는 면에서, 작품은 고정된 채 움직임을 표현해 마치 화면이 움직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 혹은 옵아트와 구별된다.
남성용 소변기로 만든 ‘샘’으로 유명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1913년 작품 ‘자전거 바퀴’를 키네틱 아트의 시작으로 꼽는다. 하늘을 향해 거꾸로 놓인 자전거 바퀴를 돌리면 가운데 바큇살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서서히 멈추면서 다시 원래 모습이 드러난다. 마치 어린 시절 놀이를 보는 듯 단순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각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깬 당시로선 혁신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20년 러시아 출신의 조각가 나움 가보(Naum Gabo)와 앙투안 페브스너(Antoine Pevsner)가 ‘리얼리스트 선언(Realist Manifesto)’을 통해 ‘키네틱’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했다. 1960년대까지 꾸준히 등장했던 키네틱 아트를 이끌었던 작가로는 마르셀 뒤샹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 라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Nagy) 등이 있다.
그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가라면 단연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다. 색칠한 금속조각과 철사를 이용해 만든 칼더의 모빌 조각은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혹은 보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끊임없는 움직임! 우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에 한 번쯤 이 부분에 매료된 적이 있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현대의 예술 그중에서도 특히 추상예술은 본질적으로 ‘불확정적’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방식으로 작품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다양한 요소를 ‘배치’하는 것, 그리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현대 추상예술의 전략(?)이다.
우리는 칼더의 모빌 조각을 보면서 다의적이면서도 모호한 메시지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들어가 급기야 참여의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인면조에 쏠린 관심은 고구려 덕흥리 고분에서 따온 독특한 캐릭터에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로 이런 매혹의 메커니즘 때문은 아닐까.
기술의 영향 받는 미술
기술의 발전은 그 시대의 세계관에 늘 영향을 끼쳐왔다. 그리고 이는 예술을 통해 시각화됐다. 키네틱 아트의 궤적을 쫓다 보면 20세기 초 미술이 어떻게 기술과 결합됐는지 그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키네틱 아트가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비롯해 미래주의(Futurism), 다다이즘(Dadaism) 등 기술과 밀접한 다양한 미술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구성주의는 러시아 혁명을 전후해 모스크바에서 일어나, 서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금속이나 유리 등 근대 공업에서 파생된 신재료를 사용해 기능성을 중시하고 기계주의적이고 역학적(力學的)인 표현을 강조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미래주의가 생겨나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역동감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美)로써 표현하려 했다. 다다이즘 역시 이와 유사하게 당시 사회의 역동성을 에너지와 기계에 대한 예찬으로 풀어냈다.
키네틱 아트 중 근래 들어 최고의 화제작을 꼽으라면 단연 테오 얀센(Theo Jansen)의 작품들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얀센은 ‘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린다. 10여 년 전 BMW 광고에 자신의 작품을 등장시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해변을 성큼성큼 거니는 예술작품! 어떤 이는 미래에서 날아온 외계 생명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이탄족을 떠올리기도 한다.
2010년 우리나라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는 얀센의 ‘해변 동물’들은 바람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그 동작이 워낙 정교하고 과학적이어서 공학물인지 예술작품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칼더의 작품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람들도 얀센의 작품을 보면 경탄을 쏟아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용하는 재료들이다. 플라스틱 튜브와 페트병이 전부다. 몸의 뼈대는 튜브가, 관절은 페트병이 담당한다. 이 간단한 재료들로 만든 작품이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데는 피스톤 원리와 크랭크축 등 기계운동 메커니즘의 원리들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키네틱 아트는 1960년대 옵아트와 대비되며 잠시 주목받은 것을 끝으로 오랫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옵아트를 눈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키치라고 깎아 내리면서 키네틱아트 역시 단순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유희’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술 전문가들은 몇 가지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키네틱 아트는 기초적인 동력이나 빛의 움직임에만 의지해 움직임을 표현하려 했다. 단순히 구성주의적 일반 예술 오브제에 움직임만을 더한 것이었다고 비판한 예술평론가 잭 번햄(Jack Burnham)의 지적처럼, 1960년대 당시의 최첨단기술을 활용하는데 소홀했다. 이는 로보틱 아트(Robotic Art)나 사이버네틱 아트(Cybernetic Art) 같은 당시 떠올랐던 예술과 대비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조금만 관찰하다 보면 움직임의 패턴을 쉽게 알 수 있어 이내 사람들의 싫증을 유발하게 됐다. 상호작용성이 없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면에만 집중하다 보니 ‘인간’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이론 또한 형성할 수 없었다. 단순히 움직이는 작품을 유희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탐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관람자와의 관계는 물론 예술과 과학의 융합, 기계문명에 따른 새로운 미와 철학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첨단기술 활용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과 접목된 예술을 얘기하다 보면 몇 가지 회의적인 생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사람들의 일시적인 호기심만 자극하고 어느 순간 사라질 가능성이다. 키네틱 아트가 그랬듯 새로운 유희, 일시적인 호기심의 대상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키네틱 아트는 그나마 당대를 호령했던 불세출의 작가들에 의해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의 ‘4차 산업혁명 예술’은 엔지니어 혹은 기술 관련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을 뿐 예술성을 인정받는 작가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더욱 그런 우려를 낳는다.
더욱이 아직까지 담론 또한 형성되고 있지 않다. 미국의 대표적 미학자 조지 딕키(George Dickie)의 ‘예술제도론’에 따르면 예술작품이란 ‘문화적 관계의 맥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예술계의 ‘자격 수여’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난다. 평단에서 담론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예술로 편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 지금 나타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예술’들은 예술이 아닐 수도 있다. 가령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장식한 드론의 화려한 군집비행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예술계의 평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작품에서 드론이 활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측면도 있다. 키네틱 아트와 달리 ‘4차 산업혁명 예술’은 대부분 상호작용성에 기반을 둔다. 바로 이 점이 이제까지의 기술과 융합을 시도한 예술사조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그리고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예술이 모두 그렇다. 드론의 군집비행도 언젠가는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더욱 진보할 터이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 결정체
다시 인면조 얘기로 돌아가 보자. 평창에 등장한 인면조는 사람에 의해 조종됐다. 그 나름대로 정겨운 볼거리다. 하지만 관절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살아 숨 쉬듯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기술적인 터치가 없었다면 인면조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다.
역사를 재해석해 콘셉트를 정한 것은 우리지만 구동 메커니즘은 니컬러스 마혼(Nicholas Mahon)이라는 캐나다 태생의 퍼핏 디자이너가 설계했다. 그는 인면조뿐 아니라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고구려 고분 벽화와 우리 민화를 소재로 한 85종의 퍼핏을 제작했다. 인형을 최종 제작한 팀 또한 말레이시아 국적이었다.
최근 신문기사에 따르면 해외 바이어들이 평가하는 우리의 4차 산업혁명 신산업 국제 경쟁력은 한마디로 ‘낙제점’이라고 한다. 전 분야에 걸쳐 독일, 미국은 물론 일본에도 한참 뒤처질 뿐 아니라 중국에도 추월당할 위기다. 한국이 경쟁력 1위를 차지한 분야는 하나도 없다. 어찌 보면 인면조 관절의 단순하면서도 수동적인 메커니즘을 최첨단의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텔의 기술력에 의해 이뤄진 평창 올림픽 개막식의 드론 군집비행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어쨌든 키네틱 아트는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아주 즉물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타오 옌센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예술과 공학 사이의 장벽은 우리 마음에서만 존재한다.”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키네틱 아트 작가 중 한 명인 최우람은 한 미술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더 자연처럼 다가오는 기계 자체, 더 살아있는 생명체를 닮은 기계들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기계와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조만간 인면조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통해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의 하늘을 날아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과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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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인면조는 4차산업혁명 기술을 통해 평창올림픽스타디움의 하늘을 날아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과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본 기사는 테크M 제60호(2018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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