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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신용카드 역사가 말해주는 핀테크의 미래

2017-10-20글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테크M=글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외상 거래의 역사는 오래 됐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일부 대형 호텔, 백화점, 주유회사는 고객의 이름이 기록된 금속 또는 판지 재질의 카드를 발급해서 외상 구매를 허용했다. 이는 고객을 관리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1915년 이후에는 이 고객 관리 수단이 소규모 호텔, 상점, 전화회사, 철도회사로 확산됐다. 이들은 고객이 매달 신용결제, 즉 외상을 이용할 수 있도록 ‘쇼퍼 플레이트(Shopper Plate)’라 불리는 토큰을 발행해 줬다.


1888년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i)의 소설 ‘Looking Backward’에서 크레디트 카드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현금이 없어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지급 결제 수단을 의미했다. 후불 신용카드가 별도 사업모델로 등장한 것은 다이너스클럽의 일시불 카드가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러 문헌에서 대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외상 거래를 비즈니스화 한 다이너스 클럽

1950년 미국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Frank McNamara)는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지갑에 현금이 없음을 알았다. 급히 아내를 불러 대금을 지불했지만, 이 사건 이후 그는 현금이 없어도 우선 구매를 할 수 있는 일시불 카드를 고안했다.

알프레드 블루밍데일(Alfred Bloomingdale), 랄프 스나이더(Ralph Snider)와 함께 다이너스클럽(Diner’s Club)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만찬 클럽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극적인 일화는 맥나마라의 동업자였던 블루밍데일이 각색한 것이며 실제로는 맥나마라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일시불 카드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연회비 18달러와 7% 가맹점 수수료를 받는 다이너스클럽의 생소한 사업모델은 처음에는 산업계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이너스클럽은 1년 후 4만2000명의 회원과 레스토랑 및 호텔을 중심으로 하는 330개의 가맹점을 확보했고, 여세를 몰아 급속히 성장했다.

1958년 이후 다이너스클럽의 성공을 지켜본 많은 기업들이 카드산업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에 호텔 체인망을 갖고 있던 힐튼 호텔, 여행자수표 사업을 영위하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그리고 미국 내 1, 2위 은행이었던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체이스 맨해튼이 대표적이다.

이후 우리나라에까지 이 사업이 확산되면서 신용카드 사업은 거대한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의 주요 은행들이 연합해 마스터 카드를 발급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비자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카드 명칭을 뱅크아메리카드에서 비자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그네틱 카드와 승인단말기의 등장

초창기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신용카드가 대중 사이에 급속히 확산된 계기는 마그네틱 결제단말기의 등장이었다. 가맹점이 마그네틱 단말기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PC가 인터넷에 연결되기 시작한 것 만큼이나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마그네틱 단말기가 도입되기 전에는 가맹점 점원이 카드번호를 전표에 수기 또는 압인으로 기록하고 고객은 본인 확인 수단으로 전표에 서명했다. 그리고 전표를 수거해서 카드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사용 고객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런 방식으로는 처리 속도에 지연이 발생했다. 뭔가 새로운 결제 방식이 필요했다.

 

 

1950년대 컴퓨터 저장장치로 자기 테이프(magnetic tape)가 발명됐는데, IBM은 이를 응용해서 1960년 플라스틱 카드에 부착하는 마그네틱 띠(magnetic stripe)를 개발했다.

1969년 IBM의 엔지니어 포레스트 패리(Forrest Parry)는 마그네틱 띠를 플라스틱 카드에 딱 붙일 수 있는 접착제를 찾았으나 실패했다.

어느 날 집에서 다리미질을 하던 아내가 띠를 다리미로 붙여보면 어떻겠느냐고 그에게 제안했다. 신통하게도 카드와 마그네틱 띠가 잘 붙었다.

마그네틱 띠를 부착한 플라스틱 카드의 본격적인 개발은 1969년 IBM의 뉴저지 주 데이튼에 있는 정보기록사업부(Information Records Division)에서 시작했다.

패리가 착상한 가열압착 기술을 응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드 정보를 바코드 양식으로 마그네틱 띠에 암호화해서 집어넣는 방식을 개발하는 데 약 2년이 걸렸다.

개발 책임자는 아더 한(Arthur E. Hahn)이었다. IBM은 1971년 마그네틱신용카드서비스센터를 열고 거래승인단말기 ‘IBM2730-1’을 공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IBM이 이 기술에 대해 그 어떤 특허도 출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IBM은 기술을 개방함으로써 시장 자체를 키우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마그네틱 카드가 활용되는 분야는 단지 신용카드만이 아니었다. 신분증, 면허증, 현금카드, 출입문 카드키, 승차권 시장 등을 포함해 무궁무진했다. 시장이 성장해야만 관련 하드웨어 판매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 덕분에 IBM은 물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한 많은 회사들이 마그네틱카드 개발에 뛰어들었다. 업계에 표준이 제정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용도의 마그네틱 카드가 속속 등장했다. 사람들의 지갑이 마그네틱 카드로 채워졌다.

현대사에서 신분 확인 수단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동시에 전화망에 마그네틱 띠 판독 장치가 연결된 순간, 신용카드의 사업체인(business chain)상 속도를 저해하는 중요한 병목 지점 하나가 해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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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가 제공하는 가치는 결국 ‘후불(後拂)의 편리함’이다. 신용카드 혁신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외상을 외상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한 것’에 있다.

 


기술과 욕구의 상승작용은 이내 시작됐다.

마그네틱 카드는 손상되거나 복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으로 IC칩이 등장했다. 이후 카드는 긁는 게 아니라 꽂는 물건으로 개념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그네틱 카드는 시장 규모 자체를 한 단계 도약시킨 일등공신이었고, IC칩은 그를 이어받은 것 뿐이다. 또한 전화선도 인터넷 라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그네틱은 디지털 매체나 적외선(IR), 주파수(RF), 근거리무선통신(NFC) 장치가 등장하기 전까지 여러 분야에서 정보를 기록,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마그네틱 카세트테이프나 플로피디스크는 자취를 감췄다. 컴퓨터의 마그네틱 하드디스크는 그나마 최근까지 사용되고 있다.

마그네틱 신용카드 단말기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2015년 7월 21일 이후 신규로 설치되는 카드승인 단말기는 IC카드를 우선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용카드 사업의 본질은 ‘시간 비즈니스’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가치는 결국 ‘후불(後拂)의 편리함’이다. 신용카드 혁신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외상을 외상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한 것’에 있다. 즉 시간의 격차를 사라지게 한 것이 주효했다. 덕분에 신용카드는 양면(two-side)에서 고객을 창조할 수 있었다.

대금을 나중에 지불해도 된다는 것은 구매자에게 매력적이었고, 구매 동기를 자극함으로써 거래 자체를 촉진하게 된 것은 판매자에게 매력적이었다.

역사상 다른 산업에서도 위대한 혁신이 꼭 첨단 기술이 반영된 신제품일 필요는 없었다.

내용은 그대로 두되 절차를 약간 바꿔 고객이 체감하는 현실을 보다 낙관적으로 변화시킨 것들이 많았다.

기계 자체를 파는 대신 사용량에 맞춰 요금을 받거나, 동일한 물건의 대금을 장기간에 걸쳐 할부 구입할 수 있도록 금융을 제공하고, 같은 물건이라도 저렴한 일회용으로 다시 만들어 팔았다. 신용카드도 그런 식의 절차 혁신 가운데 하나였다.

일단 이렇게 한 가지 잠재 욕구의 기회가 발견된 뒤에는 과학기반 기술들이 따라 붙기 시작한다. 마그네틱 띠가 신용카드 사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신용카드 사업이 마그네틱 띠를 찾게 만들었다.

IR통신, IC칩 , NFC가 신용카드 결제와 결부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보다 미세한 다른 욕구가 새로 등장하고, 기회와 기술은 비로소 상승의 선순환을 일으켰다.

핀테크는 과거 지불 행위에 따랐던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하나씩 부수고 있는 중이다. 온라인 거래와 효율적인 배송 시스템으로 지리적인 격차는 거의 사라졌고, 신용거래로 미래의 구매력은 현재화하고 있다.

다만 공간상 제약으로부터 탈피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그리 크지 않지만, 시간 제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모든 후불의 본질은 신용이다. 그러므로 신용위험관리(credit risk management)라는 견고한 메커니즘이 수반되지 않으면 이 가치는 사회에 오히려 독소가 돼 돌아올 수 있다.

신용위험에 대한 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에서 2003년에 일어났던 신용카드 위기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외형상으로는 고전적인 신용카드 방식 대신에 IT 기반으로 등장하는 결제 수단들이 백화제방(百花齊放)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기존에 사용하는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 받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신용카드 사업이 탄생한지 60년이 갓 넘었다. 하지만 이 강력한 인프라는 여전히 지불 결제 핀테크 영역에서 핵심 엔진으로 굳건히 남아 있다.

앞으로는 ‘카드’라는 단어만이 점점 지워지고 ‘페이’라는 식으로 새로운 이름들이 속속 등장하겠지만, 후불 비즈니스라는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4호(2017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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