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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더 편리한’ 화폐의 종착역, 현금 없는 사회

2017-08-18정인호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테크M=정인호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편의점에 가서 캔커피 하나를 현금으로 구매하면 동전을 몇 개 받기가 십상이다. 어떤 경우에는 10원짜리 동전도 포함되는데 귀찮아서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보다 요즘에는 신용카드로 소소한 물건을 사는 경우도 많으며, 아예 지갑 대신 휴대폰 커버에 신용카드 몇 장을 꽂아들고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바야흐로 현금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실시한 가운데 지난 4월 19일 서울 중구 세븐일레븐 소공점에서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CU동전적립카드로 동전 적립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은행은 올해 4월부터 ‘동전 없는 사회’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2만3000개의 마트, 편의점에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고객의 교통카드나 제휴카드에 거스름돈을 넣어주는 사업이다.

2020년까지 우리 사회에서 동전을 추방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첫발이 될 전망이다. 이미 스웨덴과 덴마크는 2030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폐와 동전 같은 현금은 어떤 시점에 등장하였다가 한 때 극성기를 맞았고, 현재는 점차 사라져가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폐란 ‘타인으로부터 재화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자산’인데, 지폐와 동전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은 원래 다른 수단들이 하고 있었다.

 

물물교환의 한계와 화폐의 탄생

고대에는 물물교환을 통해서 서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 최초에는 목축을 하는 유목민들이 양과 소를 교환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영어의 ‘자본(Capital)’이 라틴어의 ‘소의 머리(Caput)’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욕구의 일치는 쉽지 않아서 물물교환 거래가 활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조개, 연장, 장신구, 반지 등 가치를 표시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여 거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화폐의 시작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정해야 화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누구나 가치 있는 것을 주고 화폐로 받은 다음, 나중에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화폐로 주고 살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편리한 화폐를 ‘발견’한다. 철기 시대에는 청동기, 그리고 금·은 같은 귀금속이 화폐로 사용되었다.

표준화된 주화로서 금화는 기원전 550년 중동의 고대국가 리디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금화와 은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중국에서는 칼 모양의 철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금액이 커지면 이것도 들고 다니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해진다. 그래서 원거리 교역을 하는 상인들은 종이를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중세 유럽의 상인들은 은행업자에게 현금을 맡기고, 대신 예금증서를 받아 들고 다녔고, 어음으로 외상거래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은행의 계좌이체서비스도 이 무렵쯤 만들어진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아예 금속화폐 대신 종이화폐를 만들었는데, 다만 너무 남발하는 바람에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오늘날과 같은 은행권은 16세기 런던의 상인들이 금화를 금세공인에게 맡긴 것에서 시작되었다. 금세공인들은 금화를 맡아 놓고 대신 보관증을 써주었고, 그것은 현금처럼 사용되었으니 이것이 은행권의 시초이다. 금세공인 중에서 일부는 아예 전업하여 은행업무만 전담하게 되었는데, 이들 은행이 각자의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1694년 영국은행이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설립되었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에서 유일하게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은행으로 국가에서 인정받았다. 오늘날 국가화폐가 출범한 것이다.

1894년 경에는 미국의 한 호텔에서 단골 고객에게 종이 신분증을 발급하고, 현금이 없어도 이것을 제시하면 투숙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최초의 신용카드인 셈이다. 오늘날과 같은 신용카드로 최초의 것은 1951년 다이너스클럽이다.

 

네 번째 지급수단 된 현금

현금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오늘날도 지불이나 송금수단으로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수표와 어음, 온라인을 통한 결제와 송금의 금액은 이미 현금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이미 지급수단으로 신용카드(54.8%), 체크·직불카드(16.2%), 계좌이체(15.2%)에 이어 현금(13.6%)은 네 번째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에 대세가 된 스마트폰에는 각종 결제수단이 수두룩하게 들어있다. 여러 가지 이름 뒤에 붙는 ‘페이(PAY)’는 사전에 카드를 등록하여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전자지급결제대행서비스).

이것이 신용카드를 전제로 하는 서비스임에 반해, 선불지급수단을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이를 돈처럼 사용하는 각종 ‘머니(MONEY)’도 있다(선불전자지급서비스).

그런가하면 각종 전자지급수단을 앱에 모아놓고 마음대로 골라서 쓰든가, 쿠폰 및 마일리지 등의 부가서비스도 함께 쓸 수 있는 전자지갑 서비스도 있어, 아예 신용카드와 지갑이 모두 스마트폰 속에 들어간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모든 것은 현금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고, 다만 전자적으로 지급결제를 하는 것뿐이다. 그에 비해 현금이 없어도 인터넷을 통하여 지급결제가 가능한 것이 바로 ‘비트코인’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디지털머니’다. 이것은 그 자체가 신종화폐로서 오로지 인터넷상에서만 존재하지만, 화폐가 가지는 모든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화폐라기보다는 자산으로 간주하여 규제를 하고 있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이것을 어떻게 다루자는 합의가 없다. 그러다보니 가격은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여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랜섬웨어를 심어 놓고 현금 대신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등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현금 퇴출과 지하경제

현금을 없애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지하경제를 통한 탈세를 없애기 위해서다. 미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7.1%에 이르는데, 유럽의 경우에는 이것보다 훨씬 커서 독일이 13.4%이며, 그리스의 경우에는 25%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것은 세금과도 관련이 있는데, 미국은 세금이 적은데다가 소득세에 대한 의존도가 큰데 반해, 유럽은 세금의 규모가 크고 부가가치세의 비율이 높아, 가급적 거래규모를 적게 보이려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유럽국가가 앞장서서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소액결제에서도 신용카드 사용을 판매점에서 거부할 수 없도록 법제화한 것은 신용카드 사용을 촉진시켜 지하경제 규모를 줄이려는 시도이다.

현금 없는 사회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스웨덴과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의 소국들이다. 이들 나라는 이미 신용카드와 선불카드가 많이 보급되어 있고, 이를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지급결제하는 비율이 높다. 교회의 기부금까지 교회 계정으로 보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노숙자들도 거리에서 구걸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스웨덴의 경우, 판매점에서 현금 받기를 거부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다. 심지어 현금을 아예 보관하지 않는 은행도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노점상에서도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유로존에서도 유럽중앙은행(ECB)이 2018년부터 500유로화의 발행을 전면 중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에서도 1000유로 이상의 거액 거래에서는 현금 사용을 금지하기로 이미 결정하였다. 독일과 같이 비교적 현금을 선호하는 국가에서도 현금결제 상한선을 5000유로로 정하고 있다.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면 화폐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편리한 화폐를 ‘발견’해왔다. 사진은 로마 시대에 사용된 금화와 은화

 

바야흐로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전초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고액권이 불법적인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점진적으로 지폐와 동전을 전자화폐로 대체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 중앙은행의 화폐정책 효과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경우, 중앙은행의 고민은 기업과 개인이 현금을 인출하여 금고에 넣어두는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화폐는 퇴장하고, 경제는 더욱 불황에 빠질 수 있어 과감한 정책을 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만약 현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이너스 금리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기업은 은행을 외면하기 어렵다.

이 뿐 아니라 국가는 경제의 모든 거래를 온라인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금도 신용카드 거래내역을 모니터링 함으로써 어떤 품목에 얼마나 소비가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하여 경기를 측정하는 보조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디지털머니 발행할 수도

궁극적으로 중앙은행은 자체적으로 비트코인과 유사한 형태의 디지털머니를 발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기에는 아직 길이 멀다.

예를 들어 노인이나 어린아이, 또는 극빈층과 같이 현금 외에 다른 적절한 지급결제수단이 없는 계층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단번에 현금을 없앤다면 이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고 사회적 반발도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기술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도와 관행은 단숨에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화폐경제의 중심으로서 은행은 네트워크 산업이기 때문에 어느 한 은행만의 결정으로 디지털머니를 도입하기는 어렵다.

또한 기업과 개인의 거래관행, 그리고 경제 환경이 디지털머니로 전환하여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성숙되어야 한다. 그러한 진행상황을 지켜보면서 현금 없는 사회, 즉 디지털머니로의 길은 국가의 조율 하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현금이 없어진다고 해도 전혀 섭섭할 것은 없다. 그보다 더욱 멋있고 진보한 디지털머니로 인해 거래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고, 이제까지 불가능한 서비스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편리하고 저렴하게 지불결제와 송금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아주 소규모 단위로 판매하고 금액을 전자적으로 지불하는 소액지불 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다. 지하경제는 사라지고, 범죄를 저지르고 얻은 돈을 익명으로 숨겨놓기도 어려우니 범죄도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실시간으로 경제동향을 파악하고 적절한 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현금 없는 사회가 가져다 줄 밝은 측면이다.

그러나 현금없는 사회는 아직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미개척지이다. 그 곳까지 가는데 놓여있을 수 있는 장애와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회적인 논의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2호(2017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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