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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혈당측정기의 혁신과 스마트 헬스케어의 미래

2017-08-24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테크M=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당뇨는 다른 질병과 달리 일거에 치료가 되는 병이 아니다. 의사의 지시와 처방에 따라 환자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일상을 관리해야만 치료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자가혈당측정기는 이를 가능하게 한 획기적인 혁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자가혈당측정기가 개발된 역사는 다른 주요 혁신과 달리,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소변에 당 성분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가를 측정하는 방법은 예전부터 있었다. 고대에는 소변에 개미가 몰려드는 정도를 보고 질환의 정도를 가늠했다. 가장 거북한 방법은 소변의 맛을 직접 보는 것이었다. 사실 1950년대에 의사들은 이 방법을 사용했다.

1921년 캐나다의 의학자 프레데릭 밴팅(Frederik Grant Banting, 1881-1941)이 인슐린 주사 치료제를 개발했다. 인슐린은 과다 투여 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었으므로 투여량을 결정하는 기술이 중요한 관건이었다. 당시 혈당 측정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의료진이 어려움을 겪었다.

1945년에 소변에 시약을 넣어 색깔 변화로 혈당 수준을 판단하는 방법이 개발됐지만, 매우 불편했고 정확도가 떨어졌다. 1957년에는 요당 반응 시험지 클리니스틱스(Clinistix)가 개발됐지만, 시험 2~3시간 전의 혈당 수준이 나타나는 한계가 있었다.

 

혈당측정기 발명한 클레멘스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 마일스연구소의 자회사인 에임스(Ames)가 혈당 반응 시험지 ‘덱스트로스틱스(Dextrostix)’를 개발했다. 소변이 아니라 혈액을 이용한 측정법이 처음 도입된 것. 발명가는 언스트 애덤스(Ernest C. Adams)였다.

그러나 시험지 색깔만 보고 혈당 수준을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에임스의 엔지니어 안톤 클레멘스(Anton Hubert Clemens)는 1966년부터 더 효과적인 측정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광도측정법을 이용했다. 빛의 반사율을 통해 시험지 색의 명도를 측정, 혈당 수준을 추정한 뒤 그 결과를 나침바늘로 알려주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방식을 통해 혈당 측정의 정확도가 크게 개선됐다.

그는 1968년에 시제품을 완성했다. 그 해에 미국 특허를 출원했고 1969년 제품을 내놓았으며, 1971년에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 이 장치야말로 세계 최초의 혈당측정기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어른 손바닥보다 좀 크고 무게가 약 3파운드이며 피 한 방울, 그러니까 약 40μL(마이크로리터, 100만분의 1리터)의 피만 갖고도 1분 만에 혈당 수준을 알려주는 첨단 장비였다. 대당 가격은 650달러였는데 당시 평범한 직장인의 한 달 월급 수준이었다.

이 측정기는 초기에 병원에서 진단용으로만 사용됐고 가정에 보급되지는 못했다. 회사도 이를 개인용으로 판매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기술잡지에 난 광고를 보고 이 기계를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인물이 있었다. 리처드 번스타인(Richard K. Bernstein)이라는 35세의 엔지니어였다. 그는 12살부터 타입1 당뇨를 앓아 왔던 중증 환자였다.

 

역사상 최초의 혈당측정기를 구입해서 탄수화물과 당뇨의 관계를 입증한 리처드 번스타인

 

회사는 이 장비가 개인판매용이 아니라며 판매를 거절했다. 다행히 그의 부인이 정신과 의사여서 1970년 1월 부인 명의로 기계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 기계를 산 뒤 인슐린 투여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면서 정기적으로 자신의 혈당 수준을 매일 집요하게 점검했다. 자기 몸으로 임상실험을 한 셈.

그 결과 탄수화물 섭취량과 혈당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고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의사가 아니었던 그의 주장은 의료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당뇨 연구에 사명감을 느낀 그는 45세 되던 해인 1979년 만학으로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1983년 당뇨를 부전공으로 하는 내분비과 전문의가 됐다. 덕분에 지방이 아니라 탄수화물이 당뇨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됐고, 당뇨환자의 식이요법과 자기관리법은 일대 진전을 이루게 됐다.

최초 발명가인 클레멘스를 포함, 에임스도 자신의 발명품이 오늘날처럼 거대한 시장을 창출하리고 예상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대박 가능성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틈새시장 정도를 개척할 평범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 계기는 그로부터 10년 뒤에야 일어났다.

 

자가혈당측정 시장 연 라이프스캔

미국 미시건 주 미들랜드의 내분비과 전공의 마이클 밀러(Michael Miller)는 번스타인의 혈당측정법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는 여기에 거대한 시장이 있다고 판단했다. 1980년 어느 날 밀러는 우연히 칵테일 파티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 테드 도언(Ted Doan)을 만났다.

그는 도언에게 혈당측정기 사업 구상을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라이프스캔(LifeScan)이 설립됐다. 라이프스캔은 초창기 혈당측정기 시장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1986년에 존슨앤존슨에 1억 달러에 인수됐다.

신기술 시장은 대개 최초 발명 기업이 아니라 창조적 모방 기업이 키우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 들어서야 혈당측정기는 가정에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는 혈당측정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됐지만 수십 만 원의 고가 장비였다. 지금은 10만 원대 이내의 가격에, 채취 혈액량도 1μL 이하의 제품으로 보편화돼 있다.

1세대 혈당측정기가 등장한 지 약 40년이 경과한 지금, 혈당측정기는 2단계 도약을 시작했다.

 

무채혈 패치형 혈당측정의 길을 연 아담 헬러 교수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아담 헬러(Adam Heller, 1933~) 교수는 1996년 그의 아들 이프라임 헬러(Ephraim Heller)와 함께 쎄라센스(TheraSense)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훗날 애보트다이어비티스케어(Abbot Diabetes Care, Inc)에 인수됐다. 플래시(Flash) 혈당측정기는 피를 뽑지 않고 자그마한 패치 센서를 피부에 붙여놓는 방식만으로 혈당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채혈의 아픔과 번거로움을 없앤 획기적인 혁신이었다.

이 후 많은 벤처기업이 다양한 방식의 무채혈 혈당측정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최근 이스라엘의 인테그리티(Integrity)는 귀에 집게처럼 붙이는 방식의 혈당측정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IT 기술은 혈당측정기의 진화를 추동하는 또 다른 힘이다. 구글은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통해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국의 비르타(Virta)는 인공지능(AI), 스마트폰,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이용해 의사와 환자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병원 밖 일상생활 속에서 당뇨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최근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 리봉고(Livongo)는 혈당측정기에 무선통신 기술을 적용해 환자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그에 맞는 당뇨 관리 처방을 제시한다.

IT 기반 당뇨 관리 시스템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의과대학, 병원, 그리고 벤처기업들이 협업구조로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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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넓은 의미의 의료정보학(Health Informatics)에서는 환자 본인에 대한 정보의 비중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제약사와 의료장비 제조사들은 최근 IBM의 인공지능 로봇의 진단 능력에 자극을 받고,

기존의 화학, 약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프레임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사업모델로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2차 산업혁명보다 늦은 헬스케어 혁명

헬스케어 혁신은 의료기술 혁신보다 한참 뒤늦게 태동했다. 의료기술은 환자의 병을 치료한다는 의사의 관점, 즉 공급자 중심의 현상이지만, 헬스케어는 생활인 또는 환자 본인 중심의 현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의약기술의 돌파를 이룩한 대표적인 사례, 즉 X선이 1895년에 발견됐고 아스피린이 1899년에 합성됐으며 페니실린이 1928년에 발견됐다는 점을 감안하자. 시기상으로 현대의 혁신적 의약기술의 태동은 흔히 말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력과 전기 중심으로 일어났던 2차 산업혁명과 궤를 같이 한다.

반면, 헬스케어라는 개념은 그보다 약 두 세대 정도 뒤인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처음 등장했다. 더구나 병원이 아닌 건강관리 전문회사들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더 나아가 1980년대부터 혈당측정기가 처음 보급됐다. 개인이 자신의 질환을 가정에서 본격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은 1980년대 이후에 촉발됐다고 봐야 한다.

헬스케어는 이미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발병 가능성에 대한 진단과 예방에 초점을 두는 활동이다. 의료기술은 헬스케어와 결국 융합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IT 기술은 그 핵심 매개체 역할을 했다. 사실상 헬스케어 기술은 컴퓨터 혁명과 같은 배를 타고 왔다. 1960년대에 도입된 병원관리시스템(HIS)은 공급자 중심, 즉 병원 업무 중심이었지만, 오늘날 넓은 의미의 의료정보학(Health Informatics)에서는 환자 본인에 대한 정보의 비중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IT 기술은 혈당측정기의 진화를 추동하는 또 다른 힘이다.

 

전 세계 수많은 제약사와 의료장비 제조사들은 최근 IBM의 인공지능 로봇의 진단 능력에 자극을 받고, 기존의 화학, 약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프레임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사업모델로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이 진화하면 그리 멀지 많은 미래에는 1년에 한 번 큰 행사로 치르곤 했던 건강진단 같은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개인의 건강 및 질병 정보가 유소년 시기부터 일상으로 측정되고 제공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2호(2017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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