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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동안 뇌는 새롭게 태어난다
[테크M=글 김상연 한국뇌연구원 대외협력팀장]
평생 동안 하는 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활동은 무엇일까?
‘돈 버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25~60세까지, 대략 인생의 절반 정도에만 뚜렷한 활동일 것이다. 공부나 독서 역시 특별한 직업을 제외하면 마찬가지다. 걷기나 운동은 하루 1~2시간 일테고, 먹고 마시는 것 역시 아무리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해도 하루 평균 3~4시간이지 않을까?
그렇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루에 6~8시간은 빠짐없이 하는 활동, 바로 잠이다.
역사적으로 조금만 자고도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프랑스의 나폴레옹이나 발명가 에디슨이 하루 2~3시간만 자고 일했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오해다.
주변사람들에 따르면, 나폴레옹이나 에디슨은 실제로 잠을 많이 잤다고 한다. 더구나 이들은 토막잠이나 낮잠으로 수면 시간을 늘렸으며, 나폴레옹은 심지어 워털루 전쟁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잠이 들곤 했다고 한다.
잠을 적게 잔다면 그건 불면증 환자일 뿐이다.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 가장 악독한 고문에 속할 정도로 잠은 소중하다. 참고로 기네스북을 보면, 가장 오랫동안 잠을 안 잔 기록이 277시간이라고 하는데, 이 기록은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지금은 폐지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잠을 잘까?
사실 잠자는 시간은 야생에서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 된다. 포식자가 공격해도 막을 방법이 없고, 자신의 짝이 경쟁자에게 눈을 돌려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기를 쓰고 자는 걸까. 목숨을 걸 만큼 잠이 왜 중요한 걸까.
바로 ‘뇌’ 때문이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의 다른 기관은 푹 쉬고 있지만, 뇌는 그렇지 않다.
뇌는 잠자고 있을 때 더 바쁘다.
2013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때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밝혀주는 연구가 실렸다. 한마디로 낮에 활동하면서 뇌에 쌓인 노폐물이 잘 때 청소된다는 것이다.
이 노폐물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라고 불리는데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 물질로 가장 유력한 단백질이다. 특히 연구진은 뇌가 노폐물을 청소하는 방식을 새롭게 규명했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는 림프관이 구석구석 뻗어 있어서 노폐물을 제거한다. 문제는 뇌에는 림프관이 없다는 것인데, 연구진은 뇌에 있는 독자적인 청소 시스템이 노폐물을 제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고 두뇌 청소만이 잠을 자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어쩌면 동물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 때문에 잠을 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잠과 특히 관련이 많은 뇌의 기능은 바로 기억이다.
역시 사이언스에 2017년 2월 실린 연구를 보자. 미국 연구진은 쥐가 잠자는 동안에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를 ‘재 보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쉽게 말하면 쥐가 전날 배운 내용은 더 잘 기억하게 만들고, 쓸데없는 기억은 정리한다는 것이다.
잠을 자야 기억이 오래 간다는 연구는 예전에도 많이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뇌 속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잠자는 동안 기억을 강화시키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뇌 속에는 신경세포(뉴런)가 무려 1000억 개나 있다. 신경세포는 서로서로 연결돼 있는데 이 연결 부위를 ‘시냅스’라고 한다. 신경세포 하나는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돼있는데 이런 연결이 세포 하나 당 1000개~1만 개나 있다. 즉 뇌에는 무려 1000조 개의 시냅스가 있다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기억은 바로 이 시냅스 하나하나에 저장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자는 동안 이 시냅스가 강화되는 걸까? 다시 말하면 더 단단하게 연결되는 걸까? 연구진에 따르면, 오히려 특정 기억에 해당하는 시냅스는 조금 약화된다(스케일링 다운). 사실 시냅스가 계속 단단해져 있으면 오히려 기억이 손상된다.
우리 뇌는 잠자는 동안 특정 기억에 대한 시냅스를 조금 약화시켜 기억회로가 유연해지도록 만든다. 그리고 쓸데없는 기억이 담긴 시냅스는 연결을 끊어버린다. 이것이 잠자는 동안 기억이 강화되는 원리였던 것이다.
그러니 ‘4당 5락’이나 밤샘공부는 공부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쓰는 임시변통의 방법이지 길게 효과를 내는 방법이 아니다. 6시간 이상의 잠을 꾸준히 자는 것이 공부에는 훨씬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고교의 등교 시간을 오전 9시로 늦추자, 0교시 수업을 없애자는 운동이 있는데, 잠의 원리만 본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미국 로욜라대학교의 연구진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지능력 테스트를 한 결과, 오전보다 오후에 한 시험이 훨씬 점수가 높았다.
만일 그렇다면 수업뿐만 아니라 시험 시간이나 심지어 수능 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잠과 도덕심은 무슨 관계?
잠을 못 자면 피곤해지거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외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잠을 평소보다 못 자면 업무 효율이 확 떨어지거나 감각이 이상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이나 도덕심, 자제력도 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심리과학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잠을 못 잔 판사들이 평소보다 재판에 나설 때 형량을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받은 판결이 내행동 때문이 아니라 판사의 잠 때문이라면 억울하지 않은가.
미국에서 군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도 잠이 부족하면 도덕적인 문제를 고민 없이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말이 맞다면 비행기 조종사나 고속버스 운전사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든 직업인은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한 뒤에 자기 업무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잠을 못 잤다고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고 왜 도덕심까지 떨어지는 걸까?
많은 사람들은 도덕심이나 자제력이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도덕심이 높은 사람은 상황이나 시간에 상관없이 도덕심의 수준이 일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심이나 자제력 등은 게임 캐릭터의 체력과 비슷하다.
도덕적으로 중요한 고민을 하거나, 갈등 상황에 오랫동안 놓여 있게 되면 마음의 에너지는 확 줄어든다. 자신의 도덕심을 평소와 같은 수준으로 맞추려면 마음의 에너지를 다시 채워야 하는데 이 때 잠과 휴식이 꼭 필요한 것이다.
잠을 못자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상식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비만이다. 올해 서울대학교 의대 연구진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수면 시간이 5시간 이하면 7시간 정도 잠을 자는 사람보다 비만 확률이 최대 22% 높아진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2010년 연구를 보면 수면 시간이 하루 5시간 이하인 사람은 내장비만이 높아질 확률이 32%나 올라간다고 한다. 하루에 6~7시간 자는 사람은 내장비만이 늘어날 확률이 절반인 13%에 그쳤다.
잠을 적게 자면 왜 살이 찌는 걸까? 잠을 자지 않는 동안 더 많이 먹는 걸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잠이 줄어들면 꿈을 꾸는 얕은 잠이 줄어들고, 이 경우 단 음식이나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30%나 더 먹게 된다고 한다. 연구진은 뇌에서 맛과 향 등을 판단하는 전두엽 피질이 부족한 잠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엔 사망률이다. 잠이 부족하면 수명이 줄어드는데, 4시간 이하로 자면 7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약 60% 가량 수명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자도 좋지 않다. 수면 시간이 10시간 이상인 사람은 7시간인 사람에 비해 70~90%나 사망률이 높아졌다.
정신질환에도 부족한 잠이 치명적이다. 잠이 모자라면 우울, 불안 등의 심리를 더 많이 느끼는데, 잠을 4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들은 자살 생각을 2배나 많이 한다고 한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일단 잠을 많이 자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자는 시간은 치매에도 영향을 준다. 앞서 말했듯이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면 뇌에서 치매의 원인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기억력을 살펴보자. 잠을 자야 기억이 좋아지는데 ,기억은 신경세포의 시냅스에 저장돼 있다. 그렇다면 잠자는 동안 시냅스가 늘어날 것만 같은데, 재미있게도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진에 따르면, 잠자는 동안 시냅스는 약 20% 줄어든다고 한다.
시냅스가 줄어들면 기억이 떨어지거나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인간의 뇌는 낮에 활동하면서 수없이 많은 시냅스를 새로 만들어낸다. 우리 뇌는 밤에 이 시냅스 중 중요한 것은 살려두고, 필요 없는 것은 제거하는 ‘가지치기’를 한다. 시냅스 가지치기 덕분에 우리 뇌에는 좁은 길이 아니라 고속도로처럼 넓은 길이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한다.
시냅스 가지치기는 어렸을 때나 청소년 시기에 특히 더 중요한데, 이 시기에 얼마나 잠이 더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어렸을 때 충분히 자지 못한 수컷 초파리는 커서도 암컷에게 구애 행동을 잘 못한다고 한다. 자식의 행복한 연애와 결혼 생활을 위해서라면 먼저 잠부터 재울 일이다.
많은 과학자가 시냅스 가지치기 등 기억을 정리하는 작업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치듯 보고 지나친 일이 꿈에서 되살아나기도 하고, 전혀 엉뚱한 영상이 튀어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꾹꾹 숨겨놓은 욕망을 뇌가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 부끄러운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꿀잠 자려면
수면을 과학적으로 정의하면 ‘의식이 각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수면은 보통 ‘렘(REM)수면’과 ‘비 렘수면’으로 나눈다. 렘수면은 ‘Rapid Eye Movement’의 약자로 이때 잠자는 사람의 눈꺼풀을 올려보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렘수면은 약 1시간 30분 간격으로 하룻밤에 3~5회 나타나며 한번에 5~30분 정도 유지된다.
예전에는 렘수면 상태에서만 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렘수면 상태에서는 선명한 꿈을 꾸고, 비 렘수면 상태에서는 꿈을 꾸되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하며 선명하지 않다고 한다.
‘꿀잠’을 자려면 규칙적인 수면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 즉 평소에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좋다.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잠자는 주기를 기억하고 시간에 맞춰 깊은 잠에 빠지도록 한다. 잠에 빠지는 환경 중 중요한 것이 빛인데 당연히 어두울 때가 가장 좋고, 파란빛이 나쁘다. 파란빛을 비추면 잠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가장 적게 나온다.
휴대폰에서 파란빛이 많이 나오니 꿀잠을 자려면 가급적 휴대폰을 멀리 하자.
소음도 무척 중요하다. 흔히 산업혁명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지금 시대보다 깊은 잠을 잤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잠자는 시간은 더 많을지라도(전등이 없으니), 수면의 질은 오히려 낮았다. 당시에는 주거 지역에 소음이 많았고, 습도나 기온도 지금보다 덜 쾌적했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습관과 어둡고 조용한 환경, 그리고 편안한 마음이 꿀잠을 위한 지름길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1호(2017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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