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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혁신 시작점은 공장이 아니라 소비자다"
[좌담] 4차 산업혁명과 제조혁신의 오해와 진실
세계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벗어나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신제품, 새로운 생산방식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제4차 산업혁명이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제조업 혁신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테크M은 본격화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 제조업이 직면한 진짜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이제라도 국가적으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제조업 정책과 기업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날짜·장소: 4월 14일·SAP코리아
대담: 임채성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형원준 SAP코리아 대표
진행 및 정리: 최현숙 기자
사진: 연수희
인더스트리 4.0을 비롯해 제조업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과연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가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 제조업이 직면한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임채성 교수 혁신의 본질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제조업 혁신은 도입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스템이나 기술이 아니다. 일종의 쓰나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제조방식과 기업 간 경쟁 룰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인데 우리는 여전히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며 변화를 탐색만 하는 눈치다.
형원준 대표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의 비중이 높고 경쟁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인더스트리 4.0’이란 이름의 제조업 혁신을 국가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가 인터넷 중심,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으로 움직일 때 자신들의 강점인 제조업의 표준화를 주도하고 제조업 중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차근차근 준비한 것이다.
제조업 비중이 독일보다 높은 우리는 더 공격적인 투자와 실행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대부분 전통산업에 IT 기술을 결합시키는 툴 중심, 기술 중심의 얘기들이 많다. 기술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떤 변화에 대응하려는 것인지 인식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제조업 혁신에서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어디인가.
임채성 우리의 제조업이 경쟁 우위를 보였던 조립생산, 기계가공, 빠른 실행력 등이 더 이상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국내 기업은 하드웨어 제품 판매에 그치고 있지만 중국의 샤오미는 스마트폰에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까지 결합해 팔고 있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제조업 혁신에 대해 여전히 ‘투자수익률(ROI)’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제조혁신은 기업이 살고 죽고의 문제다. 리스크를 짊어지고 도전에 나서야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엄청난 변화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미국이나 독일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대통령 혹은 수상급이 개입해 범국가적 이슈로 추진하고 있다. 늦었지만 우리도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형원준 세계에서 앞서가는 기업들을 보면 제조업인데도 서비스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농기구를 파는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의 최종 소비자인 농부는 농사를 성공적으로 짓기 위해 농기구를 구매하는 것이다. 농기구 회사가 이에 필요한 농기구 사용법과 유지보수 등 풍년을 위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면 서비스기업이 될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의 오토바이 제조과정은 워낙 복잡해 고객이 주문해서 받기까지 몇 주가 걸린다. 이 공정이 SAP와의 프로젝트를 통해 6시간 만에 출하가 가능해졌다.
모든 것을 연결시키고 자동화한 결과다. 자동차업계도 비슷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얼마나 빨리 고객의 피드백과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제조업 경쟁력의 순서가 바뀔 수 있다.
더 나아가 개인 맞춤형(퍼스널라이제이션)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다면 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온라인 유통채널을 확대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객을 직접 공략하고 있다. 소비자를 소유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제 제조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사용하는지 직접 대화를 해야 하다. 모바일 인프라에 앞선 한국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다른 기업을 따돌릴 수 있는 경쟁력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한국시장에 없는 걸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이 SAP의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쉽다.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없기 때문에 플랫폼 만들 생각을 아예 안 한다. 대신 미국 등에 팔릴 수 있는 응용기술에 집중한다. 핀란드나 네덜란드도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먼저 국내 시장부터 테스트한다. 싸이월드가 국내 시장에 초점을 맞추다 큰 기회를 페이스북에 내줬다. 시작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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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원준 SAP코리아 대표(왼쪽)와 임채성 건국대 교수는‘제4차 산업혁명과 제조업 혁신’ 좌담을 통해 이제라도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제조업 정책과 기업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우리의 제조업 혁신은 글로벌 기업들이 내놓을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응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 같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나 기업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혁신을 도모해야 할까.
형원준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다. 과거 30년 동안 진행됐던 변화가 지금은 불과 5년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노키아가 흔들리고 삼성과 애플을 추격하는 샤오미의 등장이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자동차만 해도 과거에는 한번 잘 설계하면 프로세스와 제품 모델이 몇 년씩 갔다. 지금은 기존 산업의 ‘해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몰아치고 있다.
모든 산업분야가 그렇게 변한다면 문제의 본질은 독일, 미국, 일본, 한국 모두 그 변화에 누가 더 빨리 대응하느냐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5년 정도 앞을 내다보고 설계하는 것이 통했지만 지금은 당장 6개월 뒤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때문에 지금 당장 미래에 대한 정답을 맞추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6개월 뒤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민첩성과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인공지능은 이미 대세가 됐다. 어쩌면 내년쯤에는 주머니에 인공지능을 담고 다닐 수도 있다. 이를 아직 먼 미래로 여기거나 시간이 아직 남았다고 생각한다면 안 된다.
임채성 1900년대는 제조업에서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요즘 자동차 모델을 보면 수시로 바뀐다. 제조공정도 수시로 바뀐다. 이걸 파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대리점에서 파는 게 아니라 제품 개발과정에 이미 소비자들이 개입하는 상황이다. 3D프린터로 전기차를 만드는 미국의 로컬모터스는 제주도에 생산공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제조공정부터 비즈니스 모델까지 자유자재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이 때문에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공장을 설계할 때 라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까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조업을 혁신하려면 변화에 빨리 대응할 수 있도록 생각의 폭을 넓히면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로 정리되는 것 같다. 기업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임채성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은 최근 소프트웨어(SW) 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고 선언했다. GE가 개발한 ‘프레딕스’는 기계에 애플리케이션을 적용한 산업 인터넷 SW 플랫폼이다. 이제 제조업의 경쟁력은 SW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4차 혁명의 주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이나 3D프린팅은 실상 SW다.
그런데 우리의 SW 역량은 점점 저하되고 있다. 하드웨어는 모방이 가능하지만 SW 플랫폼은 모방도 어렵다. 선도기업을 따라잡으려 투자를 한들 그 사이 더 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이길 수 없다. SW 기술을 활용해 비즈니스 모델을 자유자재로 연결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런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모방과 추격 전략이 이제는 안 통한다.
형원준 인더스트리 4.0이나 제조업의 디지털 변화에서 관건은 최종 소비자, 즉 진짜 고객을 누가 잡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대개의 정책 관계자들과 기업들은 원천기술을 확보할 것이냐 아니면 응용기술에 집중할 것이냐를 고민한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원천기술을 가진 퀄컴보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과 애플이 우리에게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천기술을 차지한 기업의 가치와 최종 고객을 확보한 브랜드들이 갖는 기업 가치가 똑같이 중요한 상황이다.
원천기술은 예측이 힘들고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응용 SW는 한국이 잘할 수 있고 실행력도 빠르다. 국가적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금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정책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IBM의 왓슨이나 구글의 알파고를 응용해 기발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면 된다.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고 인정하고 더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제조업 혁신과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임채성 4차 산업혁명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면 핵심기술을 제대로 알고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 중 하나가 3D프린팅이다. 선진기업들은 제품 개발과정에서 3D프린팅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점차 대량생산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고가의 다품종 소량 제품 생산에 관한 시도가 거의 없다.
응용 SW를 강조하면 신속하게 따라잡을 수도 있다. 우리 것만 고집할 게 아니라 외국의 기술이나 파트너들을 적극 활용하는 오픈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 싱킹’ 등의 확산이 필요해 보인다.
형원준 디자인 싱킹은 SAP가 미국 스탠퍼드대와 협력해 만든 방법론으로 현재 문제뿐 아니라 앞으로의 문제까지 발견해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기존의 기업들이 획일적인 방법으로 성장해 왔다면, 이제는 디자인 싱킹처럼 창조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과의 협업도 포함된다. 이런 인식의 변화 없이는 새로운 제품도 혁신도 이룰 수 없다.
임채성 제조업 혁신을 추진하면서 IoT에 대한 중요성은 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가 됐다. 더불어 3D프린팅 기술에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 기술은 발전속도가 더딘 편이다.
특히 3D프린터에 의한 적층제조 방식과 로봇 등 생산 자동화기계에 의한 생산방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제조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ROI를 따지지 말고 글로벌 경쟁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탐색하고 이에 대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기회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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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원준 SAP코리아 대표는 미국 카네기멜론대 대학원 MBA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국내 최초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 도입의 실무 역할을 담당했다. 2003년 공급망관리(SCM) 전문업체 i2테크놀로지로 옮겼으며, 2008년부터 SAP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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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건국대 교수는 영국 서섹스대학 과학기술정책대학원(SPRU) 기술혁신 경영학 석·박사를 받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쳐 스탠퍼드대 교환교수를 지냈다. 국내 최초로 기술경영(MOT) MBA를 기획했고 실무 책임도 담당했다. 현재 건국대 경영대학 밀러MOT스쿨 교수, 글로벌기술혁신경영연구소장, 사단법인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장을 맡고 있다. |
<본 기사는 테크M 제37호(2016년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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