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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꿈의 직장’들이 인공지능을 탐하는 이유

2016-04-14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머니투데이방송 테크M =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꿈의 직장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연봉, 사내 병원 운영, 체육관 이용, 물리치료 프로그램, 금연 프로그램, 자녀 대학 입학 시 지원금 지급, 직원 사망 시 급여의 50%를 배우자에게 10년간 지급, 유자녀에 대해서는 19세까지 지급, 여성 육아 휴직 18주, 업무와 관계없는 개인 관심 분야 연구에 근무시간 20% 허용 등등…. 바로 구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글로벌 지식기업들의 근무환경은 대개 이 정도를 눈높이로 한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복지와 자유 뒤에는 참으로 엄격한 성과 평가가 있다. 자기학습, 혁신, 성취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없으면 결코 버텨낼 수 없는 곳이 이런 지식조직의 특성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그런 회사는 이따금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도 임직원에 대한 구타와 언어폭력, 성차별, 임금 편취, 노예를 대하는 듯 한 강압과 명령통제, 사생활 침해가 자행되는 조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모습은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초창기 서구 산업사회에서 흔한 풍경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동물로서 저열한 인간 본성이 충돌하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지옥 같은 일터는 역사가 유구하지만, 오늘날 꿈의 직장이라 할 만한 곳의 시초는 200년 전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뉴라나크 공장의 인본주의 경영 실험

1800년 로버트 오언이 고용주가 된 뉴라나크 공장은 당시 지옥 같았던 노동 현장의 축소판이었다. 아동 노동, 장시간 노동, 지저분하고 위험한 작업환경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부도덕과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고아원 출신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 법률상 의무교육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린이들은 마치 ‘동물 기계(animal machine)’인 것처럼, 또는 ‘작은 성인(little adults)’인 것처럼 혹사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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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오언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1816년에는 이른 바 새로운 시설(new institution)을 만들어서 지역의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이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시설은 세계 최초의 유치원으로 알려져 있고, 비용은 공장의 협동조합을 통해 마련됐다.



오언은 공장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질서 있게 정돈했다. 또 모든 노동자에게 기숙사를 지어줬고, 양질의 음식과 의복을 제공했다.

보건기금을 마련해 모든 직원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교육과 계도를 통해 술주정, 절도, 문란한 성생활과 같은 나쁜 습관을 교정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모든 직원이 그의 뜻을 완벽히 따른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의 노력 덕분에 뉴라나크 지역 일대가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



그는 개인이 행복해져야만 공동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봤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했던 공리주의자 벤담은 오언의 경영방식에 크게 호응했다.

오언은 개인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은 단지 그 개인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니라 그에게 올바른 지식과 습관, 능력을 기를 기회를 주지 못한 환경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단지 식량 확보 투쟁에 골몰하는 동물로 본 맬더스나 기업의 성과를 내는 노동자의 지식과 숙련을 배제하고 철의 임금 법칙에만 주목했던 마르크스 식의 시각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공장에서 사람의 잠재성을 이끌어내고 숙련을 증대시키면 기업은 성과를 내고 인간은 기아와 질병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언의 경영방식과 사상은 당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사람의 존엄을 무시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던 영국의 공장주들은 오언을 헐뜯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업자들조차 오언의 경영방식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의 방식을 관철시켰다. 뉴라나크 공장의 실험은 유럽 전역에 알려졌고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견학했다.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의 로버트 오언 박물관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의 로버트 오언 박물관)




교육훈련 통해 잠재력 극대화

오언의 성과에 대해서는 지금도 해석과 평가가 분분하다. 그의 뉴라나크 공장이 단지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운영됐으며, 노동자들은 사실상 억압 속에서 일했다는 보고도 있다. 가장 흔한 것은 그가 온정주의자에 불과했다는 비판이다.

그는 자본가로서 아버지 또는 계몽군주와 같은 입장에 서서 노동자를 교화, 심지어 개조하려고 했을 뿐 결코 노동자와 진정으로 소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적어도 사람 중심과 이익 중심이 양립할 수 없다는 당시 자본가들의 편견을 깨뜨렸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룩한 성과는 단순히 노동자 복지 증대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현대 인적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 사상의 선구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교육 훈련은 그 핵심이었다. 20세기 지식사회에서는 상식이 된 교육 훈련의 중요성을 그는 훨씬 앞선 시기에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교육은 직무능력 교육이나 창의성 개발이 아니라 인성교육에 치우쳐져 있었다는 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는 오언이 살았던 시대에 원시적인 기계에 의존하던 공업사회의 한계였다.

지식사회로 이행한 오늘날에도 주어진 환경에서 인간의 강점과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경영을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생각은 여전히 타당하다. 그가 중점을 뒀던 성격, 습관, 태도는 오늘날 강점, 전문지식, 창의성으로 교체됐다.

구글, 코스트코,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닷컴 등 이른바 오늘날 ‘꿈의 직장’들은 단순히 복지가 좋은 곳을 넘어 바로 직원들이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곳을 말한다.



사람의 잠재성을 극대화한다는 철학의 측면에서 오언이 덜컹거리는 거대한 방적기 대신 오늘날 정교한 자동화 공정과 인공지능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소외의 공포에 떨었을까?

오히려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인공지능을 개인의 도덕성과 능력을 극대화하는 교육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더 질서 있고 품격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의 방직공장 유적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의 방직공장 유적)




오언이 개혁하려던 현실은 인간이 기계에 종속된 현실이었다. 기계가 인간의 확장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오히려 그 노예 내지 부품이 된 현실로부터 인간을 다시 주인으로 회복시키고 싶어 했다.

인간을 이렇게 취급한 주범은 자본가였다. 인간과 기계의 경쟁은 그 때부터 있었다. 19세기 이래 노동자의 눈에 기계는 자신의 일자리를 뺏는 악마였고, 자본가의 눈에 사람은 거대한 기계에 붙어 단순반복 작업만을 해야 하는 짐승이었다.



대다수의 자본가가 이처럼 기업을 단지 경제적 목적으로 취급하고 인간을 그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을 때, 소수는 기업이 결코 경제 현상이 아니라 사회 현상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오언이나 마르크스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다만 오언은 교육훈련으로 노동자의 사회성을 회복하려 했고, 마르크스는 권력 전복으로 그 일을 하려 했다는 차이가 있다.



역사 이래 인간을 확장하는 두 가지 수단이 있었다. 하나는 교육훈련이었고 하나는 기계였다. 기업은 최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이 두 가지 수단을 병행해 왔다. 또 이 둘은 항상 교대하면서 상대방을 발전시켜 왔다.

더 나은 기계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그 기계를 이용해 최대의 성과를 내는 지식과 숙련과 태도를 육성하고, 그와 관계된 다른 직무를 설계해야 했다. 필요한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도 내부화와 외부화를 병행했다.



사무자동화 소프트웨어가 보급됐다고 해서 인간이 사무로부터 해방됐는가? 아니 추방됐는가?

오히려 사무는 더 늘었다. 2차 대전 이후 컴퓨터가 회사에 보급되면서 많은 전문가가 중간관리자가 소멸할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중간관리자는 오히려 급증했다.



기계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마치 영원히 반복되는 숨바꼭질과 같다. 컴퓨터에게 일을 맡긴 뒤 이내 사람들은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새로운 일을 찾거나 만들어낸다.

다시 컴퓨터는 그 일을 잘 해내게 될 것이고, 사람은 또 자신의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낸다.



이때 교육훈련은 단순히 이미 개발된 컴퓨터를 둘러싼 기능에 익숙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 등장한 사람의 일을 보다 잘 해내기 위한 창의성과 목표 달성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된다.

그런 의미에서 200년 전 산업사회 초기에 오언이 수립한 교육훈련의 전통은 지식사회에서도 끝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오언은 그의 사후 기계의 진화와 그에 따른 교육훈련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죽었을 뿐이다.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구글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구글)




인간이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이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고안된 기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모든 지식, 모든 조직 형태, 모든 사람의 일, 모든 기계의 일은 다만 거기에 봉사하기 위해 잠시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가 사라지라고 명령하면 기업은 사라져야 한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을 통해 보건, 치안, 환경 등 사회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것을 딥마인드의 사명, 즉 존재 이유로 파악하고 있다.

그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확장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인간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그 일을 못하니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00년 전 오언의 실험 가운데 일부는 성공했고 일부는 여러 결함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인간의 잠재성 극대화와 행복한 공동체 달성을 향한 꿈은 오늘날 구글, 페이스북, 쓰리엠, 이케아 같은 첨단 지식조직의 기업 문화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 모든 조직이 지금도 부단히 기계를 채택하거나 개발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모든 기계는 인간을 확장하는 것이지 결코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람에 대한 교육과 훈련만이 새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으며, 교육 받은 사람이라야 다시 그 기계를 버리고 새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다. 조만간 알파고 쯤은 매우 진부한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연구와 창조와 혁신의 선두에 선 인간은 결코 주인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언제나 노예가 되는 사람은 학습하고 연구하고 창조하고 훈련하지 않는 사람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기계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로버트 오언은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1858)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1858))




영국 중부 웨일스, 포위스시의 작은 마을 뉴타운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청소년기에 견습공과 사무원 생활을 하면서 독학했다. 젊은 시절에 고용주로 활동하면서 조직과 노동자의 현실을 체험했다.



1800년에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에 있는 방직공장에 지분 참여하고 경영자가 됐다. 뉴라나크 공장에서 인본주의 경영을 실천하고 이 모델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는 미국에서 유토피아 공동체 건설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귀국 후 노동조합 운동, 협동조합 등을 주도했다. 19세기 유럽에서 사회주의의 초기 사조를 형성한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저서로 ‘사회에 관한 새로운 견해(1816)’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36호(2016년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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