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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경제학자가 예견한 구글, MS의 성장비결
[테크M =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200여 년 전만 해도 정부가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사고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정부의 눈에 산업은 육성할 대상이 아니었다. 산업은 정부와 별개의 활동이 이뤄지는 영역이었고 기껏해야 정부가 재정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 정도로 비쳤다.
특히 영국에서는 더욱 그랬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아담 스미스의 작은 정부론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정부가 기업 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의 현실은 달랐다. 미국, 독일, 일본 등 20세기 경제의 패권을 영국으로부터 앗아간 나라들은 스미스의 주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 주도 하에 산업을 육성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정부가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펼치는 일은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책임 방기라고 생각할 정도다.
정부가 주도해서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제기했던 인물이 바로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다. 비록 리스트의 사고는 지원을 통한 적극적 육성이 아니라 관세를 통한 소극적 보호에 치중했던 면이 있지만, 그의 사상은 많은 후진국 정부의 산업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기반이 됐다.
미국 경제학의 원류는 보호주의
미국은 현대 주류 경제학의 본산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경제 정책을 입안할 때 이론적 근거는 대부분 미국 경제학자들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경제학은 사실 미국의 경제학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유럽 경제사상들, 마샬, 왈라스, 케인즈, 하이에크, 슘페터 등등의 생각이 이민해서 정착한 뒤 발전한 사상에 불과하다.
미국의 토종 경제학은 보호주의였다. 미합중국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해밀턴(Alexandre Hamilton, 1755-1804)이나 미국 정치경제학의 시조인 레이몬드(Daniel Raymond, 1786-1849), 케어리(Mathew Carey, 1760-1839) 등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이 내세운 사상은 유럽을 지배했던 스미스의 자유무역주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미국은 오늘날 세계화의 중심 세력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정책적 기조는 국익에 따라 보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를 항상 오갔던 것이 사실이다.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에 대한 보고서(Reports on the Manufacture)’에서 이미 영국과 유럽 각국을 상대로 미국이 강력한 독립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으로 보호관세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미국이 불황을 경험하면서 해밀턴의 보호관세론은 일반 기업인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얻었고, 급기야 1824년에 관세법이 의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북부의 보호무역주의자와 남부의 자유무역주의자 사이에는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리스트는 원래 자유주의자로서 스미스와 세이의 생각을 따랐다. 그러나 영국 공산품이 독일에 대거 유입되면서 독일 산업이 붕괴되는 현상을 보고, 자유 무역이 당사자 모두에게 이롭다는 그들의 이론에 강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보호주의 사상이 태동했다. 하지만 이 사상은 리스트 혼자 생각해낸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보호주의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신적 자본의 존재를 발견하다
스미스와 세이는 한 사회의 생산력을 노동의 분업과 물질적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러나 리스트는 이들의 생각에도 의문을 품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세이의 모험적인 기업가(entrepreneur) 사상에는 별로 주목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리스트가 이들 사상가에 대하여 품었던 가장 큰 의문은, 과연 한 사회의 생산력이 노동의 분업과 물질적 교환이라는 요소에만 중점을 두고 설명될 수 있는가에 있었다.
그렇다면 인구가 충분히 많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매일 같이 땀 흘려 노동하는 나라보다, 적은 인구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어떻게 더 생산적일 수 있는가? 거의 동일한 자연 조건을 가지고도 어떤 사회는 훨씬 부강하고 어디는 그렇지 못한가?
그는 육체노동과 분업 너머에 있는 요소, 그리고 스미스와 세이가 모호하게 말하고 그쳤던 숙련의 개념보다 더욱 상위에 있는 개념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정신적 생산력(mental capital)이었다.
리스트에 따르면 국가의 생산력을 결정하는 세 종류의 자본이 있는데, 그것은 자연 자본, 물질적 자본, 그리고 정신적 자본이다. 스미스와 세이는 이 중에서 자연 자본과 물질적 자본에만 초점을 두었을 뿐 결코 정신적 자본을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스미스가 법관, 행정관, 예술가, 서기 등의 노동이 비생산적이며, 돼지를 키우는 노동은 오히려 생산적이라고 간주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리스트는 자연 자본과 물질적 자본을 보다 생산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한 국가에 축적된 정신적 자본이라고 보았다. 고도로 발전한 학문과 예술, 지식 재산을 보호하는 공적인 제도와 법률, 이 모든 것들을 형성하고 증진시키는 노동이야말로 생산적이라는 얘기다.
리스트는 훗날 경제학자들이 인적 자본(human capital), 지식자본(knowledge capital), 그리고 신뢰자본(trust capital)이라고 명명하게 되는 개념들을 선구적으로 주장했다. 물론 리스트보다 약간 뒤늦은 시기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사람도 자본을 생산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로서 사회에 형성된 우월한 기술과 지식, 그리고 신용을 강조하기는 했다. 그러나 밀은 토지, 노동, 자본의 3대 생산요소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반면, 리스트는 정신적 자본을 자본의 당당한 한 범주로 끌어올렸다.
리스트의 이야기가 맞았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진짜 자본은 결코 자연 자본도 물질적 자본도 아니다.
과거의 산업은 거대한 증기기관, 굴착기, 컨베이어 시스템 등만 갖추고 있으면 노동자들은 별다른 지식 없이도 경영인의 지시대로만 일함으로써 충분히 이들을 구동할 수 있었고 기업은 생산과 판매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자연에서 생산했던 작물과 광물도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제한된 자연 조건에서도 훨씬 잘 생산해낼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오늘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토요타자동차 같은 기업의 진정한 자본은 그들의 널찍하고 세련된 건물도, 고가의 컴퓨터도, 로봇 생산 라인 그 자체도 아니다. 오직 이들을 다룰 수 있는 연구원과 경영진의 왕성한 지식 생산 능력이다.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을 이루는 스마트 팩토리의 본질은 데이터를 통신하고 처리하는 물리적 시스템 자본이 아니라, 고도의 설계 능력과 운용 지식을 갖춘 인력들의 정신적 자본이다.
수많은 현장에서 노동을 대체하는 장비들, 즉 생산재를 생산하는 창의적인 지식들이 확산되면서 많은 일자리에서 단순 노동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창의적인 지식 생산력이 빠져나가 버리면 모든 공정은 중단되고 말 것이다. 더구나 구성원들 사이에 형성된 목표 자각, 기여, 신뢰, 혁신, 학습의 문화는 이 성과를 배가시킨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모든 정신적 자본은 오늘날 재무제표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기업의 정신적 자본만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한 나라의 정신적 상부구조, 즉 학문과 예술의 수준, 법률과 제도의 정비 상태, 시민의 도덕성과 신뢰의 문화, 사회를 통합하는 긍정적 가치관도 한 나라의 총체적 생산성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상부구조 역시 국민계정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리스트의 정신적 자본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진정 ‘보이지 않는 기(氣)’다. 이것이 없는 기업 또는 국가는 이를 갖춘 상대를 결코 따라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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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는 자연 자본과 물질적 자본을 보다 생산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한 국가에 축적된 정신적 자본이라고 보았다.
고도로 발전한 학문과 예술, 지식 재산을 보호하는 공적인 제도와 법률,
이 모든 것들을 형성하고 증진시키는 개념들을 선구적으로 주장했다.
신생 벤처 보호받아야
리스트가 자유무역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아직 한 나라가 미성숙한 발전 단계에 있을 때에는 그 나라의 산업이 충분히 성장해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선진국과 대등한 조건의 자유무역에 노출시켜서는 안 되며, 그 산업이 충분히 성숙한 뒤에는 비로소 아담 스미스가 말했던 자유 무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 리스트는 궁극적으로 자유주의자였다. 보호는 단지 미성숙 단계에서 필요한 조치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의 과도한 개입에 대해서는 언제나 신중했다.
그의 취지는 한 사회가 처한 단계성과 그 고유성을 전제하고 특정 이론을 적용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한 사회에서 통용됐던 아무리 우수한 이론, 선진국 영국에 통용됐던 아담 스미스의 이론이라고 해서 결코 다른 사회, 예컨대 아직 미발전 단계에 있는 독일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는 스미스가 한 국가가 처한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개인 경제학과 만민(cosmopolitan) 경제학만을 전개했을 뿐이며, 그의 책 제목에 포함된 ‘여러 나라의 부(wealth of nations)’와 달리 그의 책에서 사실 ‘나라’ 자체가 실종되어 있다고 말했다. 리스트는 개인 경제학과 만민 경제학 사이에 국민 경제학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스트는 그의 유치산업 보호론과 같은 맥락에서 신생 벤처도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경험과 기술, 지식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제조 과정의 어려움은 고사하고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신제품에 대한 고객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이런 지식이 형성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충분히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 지금 당장 경쟁해야 한다. 이들이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방임하게 되면, 수많은 기업들이 실패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이런 실패가 만연하면 기업가들의 의욕이 꺾이고, 벤처캐피털도 벤처 사업에 투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어떤 분야의 제조업 경험이 충분한 나라에서는 그런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력이 충분히 형성돼 있고, 경영진 역시 충분히 신뢰를 얻고 있다. 그래서 신흥국의 벤처는 이들과 도저히 경쟁할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선진국이 자국의 성숙된 기업을 보호하려는 조치까지 취하게 되면, 해외의 신생 벤처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풍부한 두뇌 기반과 넘쳐나는 엔젤과 벤처캐피털 기반을 갖춘 미국의 벤처와 대부분 인력난과 자금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벤처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민간에만 맡겨야 한다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지만, 정부가 백화점식 지원 정책만 양산하는 것도 자원만 낭비하고 별다른 결실을 내지 못할 위험이 있다.
리스트의 사상에 초점을 두고 보자면 핵심은, 국내 벤처가 세계의 선도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지식, 즉 정신적 자본을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축적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포인트가 아니다. 처음부터 국내 시장을 목표로 하는 벤처는 후순위로 돌려야 한다. 백화점식 지원으로는 세계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벤처를 선정하기도, 성장시키기도 어렵다.
1970~1980년대에 우리 정부가 시행한 육성책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을 배출하는 데에는 분명히 성공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지식 경제로 전환된 1990년대 이후 20여 년에 걸쳐 그토록 많은 자금을 벤처 육성에 쏟아 부었음에도 아직껏 그들 가운데 진정 세계 시장을 선도한다고 할 만한 기업이 나오지 않았다면, 뭔가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Georg Friedrich List, 1789-1846)
독일의 관료 출신 경제학자이자 언론인.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시조. 1789년 독일 뷔템베르크(Wuttemberg) 공국 출생. 청년 시절 재무부 등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817년에 튀빙겐대학의 국가 행정학 교수가 됐다. 독일 내 보수 세력을 강도 높게 비판한 끝에 정부에서 실형을 선고 받자 해외로 망명했다.
1825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의 정치인,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보호주의 경제 사상을 형성했다. 서한집인 ‘미국정치경제론(Outlines of American Political Economy(1827))’, ‘정치경제학의 국민적 체계(Das Nationale System der Politischen Okonomie(1841)’ 등의 저서가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2호(2016년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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