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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돼지와 소크라테스’가 경제학에서 나온 까닭
[테크M =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19세기 영국 지성사의 결실과도 같은 인물이다. 대학교수 생활을 하지 않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사상 체계를 키웠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는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아버지의 조수 업무를 시작했던 1823년부터 35년간 근무했다. 그가 틀에 짜인 생활을 하면서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오전 10시 출근에 오후 4시 퇴근이 가능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회사 생활을 즐겼다. 자서전에 따르면, 사무실의 각종 서류 작성과 관리 업무를 오히려 철학과 경제학 연구라는 과중한 부담에서 해방되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그는 동인도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성실한 직장인으로서 약 1700편의 업무 보고서를 남겼다.
어쨌든 그 이전까지 등장했던 모든 정치경제학, 철학, 정치학은 그의 두뇌에 용해된 뒤 재탄생했다. 그의 ‘정치경제학 원리(1판 1849~5판 1862)’는 훗날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의 ‘경제학 원리(1890)’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국 주요 대학에서 표준 경제학 교과서로서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19세기 말 2차 산업혁명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본 기술 혁명은 증기기관, 철도, 증기선까지였다. 그의 사후 19세기 말부터 전개된 전기, 화학, 전화, 라디오, 자동차, 항공기 산업의 혁신이 훗날 얼마나 세상의 모습을 뒤바꾸어 놓을지 알 수 없었다.
또 그는 인생의 말년이었던 1860년대에 영국에서 회사법이 통과되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후 주식회사 제도가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20세기 인류 사회를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 실감할 수 없었다. 당연히 훗날 초거대기업의 등장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도, 그리고 IT와 모바일 혁명도 예견할 수 없었다.
어떤 기술이 등장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영국, 1791-1871)는 밀과 동시대의 인물이었다. 1823년에 그가 구상했던 차분기관(difference engine)은 프로그램에 의한 계산이 가능한 기계로서, 즉 오늘날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만한 장치로 인정되고 있다.
또 배비지는 ‘기계와 제조업의 경제에 대하여(On the Economy of Machinery and Manufactures)(1832)’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업무를 표준화.세분화하고, 노동자의 숙련을 향상시키는 교육훈련을 실시함으로써 공장 생산을 효율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비지 역시 훗날 대량 생산 시스템과 공장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혁명, 더 나아가 로봇이 사람의 단순 업무를 대체하는 미래를 암시한 선구적 사상가였다.
밀은 배비지의 발명과 그의 경제 사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배비지의 생각을 통해 미래에 인간의 능력을 극복, 확장시켜주는 기술의 위력이 한 없이 전개될 것임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술들이 과연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밀이 확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실은, 인간은 이 우주에서 그 무엇도 새로이 생산해낼 수 없으며, 오직 발견하거나 재배치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밀을 기르는 것은 단지 대지와 공기에 이미 있는 입자들을 새로운 형태의 결합으로 변형시키는 행동에 불과하다. 오늘날 IBM이나 구글의 첨단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하는 과정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향상된 기술과 지식을 통해 수행되는 모든 종류의 재배치가 필연적으로 우월한 생산성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밀에게도 분명했다. 오늘날 공장 조립라인을 지배하는 자동제어와 로봇 공정 시스템,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기업의 상품 추천 시스템, 또는 금융기관의 고객자산관리용 로봇 어드바이저 시스템이 그 이상을 하나씩 달성해 왔다. 물론 밀은 그 방향만을 알고 있었을 뿐 구체적인 모습을 예견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밀보다 몇 배 뛰어난 능력을 갖춘 탁월한 지성이라 해도 이미 발생한 기술에 의거해 상상을 할 수 있을 뿐, 아직 등장하지 않은 기술을 예측할 수는 없다. 미래학자들은 자신이 예측자임을 자부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실현된 기술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본을 돈으로 보거나, 기계나 건물 같은 장치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자본에는 분명 그런 속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회계 처리나 투자 금융의 편의를 위해 등장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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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단지 돈이나 상품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재생산에 기여하는 만큼의
부로 봐야 한다.”
동일한 대상도 시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그의 ‘정치경제학 원리’에 따르면, 자본은 ‘재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부(the wealth appropriated to reproductive employment)’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자본금으로 기업에 납입돼도 이 돈이 재생산에 기여하는 노동력을 구입하는 데에 적절히 지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본으로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단지 소비된 것에 불과하다.
표면상 노동이 아니라 기계를 구입했다고 해도 본질은 거기에 축적된 노동을 산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스크루지 영감이나 허랑방탕한 피상속인을 자본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저축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개인의 소득도 단지 향락과 사치에 쓰이고 정신적 육체적 재생산을 위한 활동에 지출되지 않는다면 자본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한낱 소비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돈을 자본으로 만드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순전히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한 사회가 자본의 축적을 얼마나 장려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경제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축적된 부가 단지 쾌락과 욕망을 위해 소비되는 것, 예컨대 상류층의 돈이 값비싼 실내 장식품을 사들이거나 화려한 연회를 개최하는 데에 소비되는 쪽보다, 사회의 생산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데에 투입되는 쪽이 돈이 자본으로서 역할을 더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그는 자본과 자본 아닌 것의 구분은 그 자본이 구입하는 상품의 내역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마음(the mind of capitalist), 즉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구입해 사용하려 하는가 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봤다.
21세기 경영자가 갖춰야 할 덕목
그러나 그는 이런 선택 과정에서 자본가의 마음과 의지가 결정적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경영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밀은 경제가 어떤 법칙을 따라 스스로 움직인다는 아담 스미스, 리카도, 맬서스와 같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세이(Jean Baptiste Say)가 자본을 생산적인 목적으로 유입하고 이동시키고 배분하는 역할을 하는 능동적인 기업가, 오늘날 의미로 말하자면 혁신 경영자가 그 역할을 해줘야만 자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생각에서 오히려 후퇴한 감이 있다. 그가 노동자 협동생산을 옹호한 것도 경영자의 역할을 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유 자본가와 혁신 기업가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아직 실감하지 못했다. 물론 양자는 겹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밀이 살았던 시절의 한계였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오너 경영자 이외에 노동자보다 높은 지위에서 경영 권한을 부여받은 인물은, 기껏해야 오너의 대리인으로서 감독자 내지 관리자에 불과했다.
사실 그들은 자본의 재배치를 직접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이것이 19세기 후반까지 경영자, 즉 ‘매니저(manager)’라는 단어가 지닌 뜻이었다.
만약 밀이 지금까지 살아서, GM의 알프레드 슬로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와 같은 스타급 혁신 기업가는 물론이고, 수많은 기업의 비(非) 오너 전문 경영자와 중간 간부들이 자원의 재배치를 주도함으로써 성과를 창출하는 모습을 봤다면, 그는 자본가가 아니라 경영자의 마음과 의지, 그리고 능력이야말로 공동체의 성과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 경영자의 능력이 단순히 노동자의 능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인적 자본의 중요성 부각
아담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처럼 선대의 사상가들도 기업 성과를 낳는 데 지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기는 했다. 밀도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전형적 3대 생산 요소라는 구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식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크게 부각시켰다.
그는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3대 생산 요소의 투입을 단순히 증가시키는 것 외에 한 사회가 우월한 생산성을 이룩하도록 하는 4가지 요인으로 자연적 이점(천혜의 자원, 기후요건 등), 더 많은 노동 에너지(근면성, 체력 등), 사회에 형성된 우월한 기술과 지식·신용, 우월한 안전을 들었다.
앞의 두 가지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반면 세 번째 요인은 비(非) 경제 요인으로서 잘 보이지 않는다. 탁월한 발명이나 기술진보는 그나마 효과가 분명해 보인다. 노동자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관리 감독자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언제나 소수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 감독자가 오늘날은 경영자로 의미가 바뀌었다. 심지어 단순 노동자조차도 영특하거나 도덕적인 경우는 그렇지 않은 자에 비하여 적다. 관리자나 노동자들이 얼마나 거짓, 사기, 탐욕, 쾌락, 방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리고 수준 높은 지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생산력이 결정된다. 밀은 이 요소가 교육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런 면에서 밀은 훗날 인적 자본론의 선구자였다.
네 번째 요소는 사회 구성원들이 정부나 여타 권력으로부터 재산이나 권리를 침탈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 역시 비경제적 요인이지만, 자유시장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정치적 선결요건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밀은 우수한 인력과 자원을 보유했던 아시아의 나라들이 10세기에 가난해진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봤다.
“만능 칼은 없다”
밀은 당시까지 서구에서 이룩된 거의 모든 지적 전통에 바탕을 두고 경제학 분야에서도 가치론, 성장론, 공황론은 물론이고, 논리학, 윤리학, 사회 철학의 여러 영역에서 매우 다양한 주장을 남겼다.
사상의 숲이 워낙 넓고 깊은 나머지 사람들은 오히려 밀이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벤덤의 기계적 공리주의를 극복한 명제, “만족한(배부른)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짤막한 표현이 대중에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밀은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안 나머지, 세계에 대해 ‘반드시 이렇다’고 하는 극단주의나 원리주의가 성립할 수 없음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주장했지만 공동체에 위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자유에는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경제의 작동에는 일종의 자연 법칙 같은 것이 있지만, 분배 문제는 사람이 제도를 선택함으로써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그를 절충주의자라거나 타협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강력한 도그마가 멋져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생각을 읽다보면, 사회나 기업을 막론하고 단 한 가지 만능의 칼은 없으며, ‘무수히 많은 옳음들’ 사이에서 취사선택하고 종합하는 지혜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영국 1806-1873)
영국의 철학자, 사회사상가. 당대의 석학이었던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로부터 유년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영재 교육을 받은 결과 10대 중반에 이미 대부분의 그리스어, 라틴어를 포함한 다수의 외국어와 서양 고전을 섭렵했다. 성년 시절에는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정신세계를 접하고 동인도회사 근무 및 정치 활동 등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면서 사상 체계를 다듬어 갔다.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철학을 집대성했으나 타인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자유와 공동체를 구성하는 정신적·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사회주의의 여러 장점들을 수용해서 토지 상속제도 개혁이나 협동생산 등 사회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유론’과 ‘정치경제학 원리’를 비롯해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1호(2016년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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