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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IP 확보 위해 거금도 아깝지 않다”

2016-07-11주상돈 IP노믹스 대표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조수인 왓슨과 함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다. 전화기를 발명한 날, 벨이 옆방의 왓슨에게 했다는 유명한 말, “미스터 왓슨, 이리로 오게. 자네가 보고 싶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전화 통화기록이다.

벨은 같은 해 2월 14일, 미국 특허청에 ‘전화발명’ 특허를 접수한다. 그러나 바로 몇 시간 후 전화 기술을 등록하기 위해 특허국을 방문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이젠 누구도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엘리셔 그레이’다. 이 불운한 천재 과학자는 불과 몇 시간 차이로 벨에게 전화기 특허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레이는 평생을 전화기 개발에만 몰두한 전신 엔지니어다. 전자기학 전문가였던 그가 기술면에서 벨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는 것이 주변 과학계의 평가다. 하지만 벨은 전화기 하나로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사업가로 성공한 데 반해 그레이는 후회와 통탄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전화기에 한 맺힌 또 다른 사람이 ‘윌리엄 오톤’이다. 그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하던 당시, 세계 최고의 전신회사이던 웨스턴유니언 사장이다. 벨이 음성전화 기술 특허를 10만 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했을 때 오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주변 사람 대부분이 벨의 전화 발명을 ‘장난감’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벨은 자신의 발명품이 인류 미래 생활을 바꿔놓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1878년 회사를 만들었고, 이후 급성장해 1910년에는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웨스턴유니언의 경영권을 확보하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그레이엄 벨은 경쟁자보다 불과 몇 시간 앞서 등록한 ‘전화 특허’ 덕분에 명성과 부(富)를 모두 거머쥔 셈이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첫 번째로 만든 전화기. 벨은 미국 특허청에 가장 먼저 전화발명 특허를 접수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첫 번째로 만든 전화기. 벨은 미국 특허청에 가장 먼저 전화발명 특허를 접수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지식재산(IP)이 곧 기업자산


이미 오래전부터 특허, 디자인, 상표 등 지식재산(IP)은 기업에게 엄청난 자산이자 강력한 무기로 활용돼 왔다. 그래서 모두들 ‘지식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도 벌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난 1985년 S&P500기업의 시장가치 요소 가운데 특허 등 지식재산권 자산의 비중은 32%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엔 80%까지 증가했다. 오는 2025년에는 전체의 95%에 이를 전망이다.


애플과 삼성전자 소송에서 보듯, 초대형 기술업체 간 특허 전쟁도 지식재산을 확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스탠퍼드대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폰 업계가 매년 특허 분쟁에 사용한 비용만 무려 1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화성 탐사선을 여러 차례 쏘아 올릴 수 있는 돈이다.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특허 소송이나 지식재산 매입에 투자하는 돈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이미 연구개발(R&D) 예산을 넘어섰다.


그래서 미래 예측가들은 “지식재산이 없는 국가와 기업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언한다. 제품 생산과 기술 개발, 마케팅까지 대부분을 아웃소싱하는 상황에서 조직 경쟁력도 결국엔 지식재산 확보에 달렸다. 특허가 개인은 물론 기업의 미래 부와 경쟁력을 창출하는 핵심 원천이 된 것이다.



애플이 구사하는 특허 경영 전략에는 미래 비즈니스가 녹아 있다. 미래기술 선점을 목표로 특허매입·등록·인용 네트워크가 맞물려 돌아간다.
(애플이 구사하는 특허 경영 전략에는 미래 비즈니스가 녹아 있다. 미래기술 선점을 목표로 특허매입·등록·인용 네트워크가 맞물려 돌아간다.)



특허경영 기린아, 애플


애플은 10여년전 아이폰(iPhone)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열었다. 그 결과, 지난 수년간 기술 혁신으로 미래 시장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애플이 구사하는 특허 경영 전략에는 미래 비즈니스가 녹아 있다. 미래기술 선점을 목표로 특허 매입·등록·인용 네트워크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애플은 필요한 특허를 망설이지 않고 사들인다. 지난 10년간 총 2300여개 특허를 매입했다. 특히 아이폰 출시 직후인 2009년부터 특허 매입이 크게 늘었다. 실제로 애플의 특허 경영은 기업 인수합병(M&A) 및 대량 특허 매입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M&A와 특허 매입을 통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이후 특허 등록을 빠르게 늘려 기술 장벽을 쌓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터치패널(Fingerworks 인수) △지문인식(Authentec 인수) △운영체계(특허 대량 매입) 등 분야다.


애플이 특허 등록을 크게 늘린 기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특허 등록이 급증하기 1~2년 전에 기업 인수합병(M&A)이나 대량 특허매입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애플은 매입을 통해 핵심 특허를 확보한 후 자체 등록을 크게 늘려 높은 진입 장벽을 쌓기 때문이다.


애플 전략은 터치패널 부문에서 잘 드러난다. 애플은 2005년 터치패널 전문기업인 핑거웍스(Fingerworks)를 인수했다. 핑거웍스가 보유한 터치패널 기술은 곧바로 2007년에 출시된 ‘아이폰3’에 적용됐다. 외부 특허 매입을 통해 자체 기술혁신에 성공한 것이다. 터치패널 기술을 확보한 애플은 이후 자체 등록을 크게 늘렸다. 2007년까지 5건에 그쳤던 터치패널 특허 등록이 2008년부터는 200여건으로 급증했다. 대신 2008년 이후 터치 패널 관련 특허 매입은 크게 줄었다.


이처럼 핵심 기술을 사들인 후 관련 특허를 집중 등록하는 애플의 특허 전략은 시리(Siri)와 오센텍(Authentec) 인수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2010년 인수한 시리 기술은 2011년 출시된 아이폰4에, 2012년에 사들인 오센텍 기술은 2013년 출시된 아이폰5에 탑재됐다.


애플이 특허 경영에 집중하게 된 데는 뼈아픈 사연이 있다. 애플은 글로벌 기업 가운데 특허 소송을 가장 많이 당해온 기업이다. 지난 10년간 총 383건 소송을 당했다. 특히 지난 2006년에 싱가포르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러지가 제기한 ‘트리구조 유저인터페이스(UI)’ 관련 특허침해 소송은 애플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크리에이티브는 애플보다 불과 2개월 빨리 출원한 특허로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3개월간의 소송 끝에 애플은 크리에이티브와의 화해를 결정한다. 합의 조건으로 특허 라이센스 비용 1억 달러를 지불했다. 여기에 아이팟 악세서리 시장(약 20억~40억 달러) 진출권도 줬다. 이 사건 이후, 애플은 UI에서만 7718건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후에야, 특허경영에 눈을 뜬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OL을 통한 특허 확보에서 나타난 것처럼 최소 비용으로 필요한 특허를 확보하는 동시에 분쟁 리스크를 제거하는 치밀한 특허 매입 및 매각 전략을 구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OL을 통한 특허 확보에서 나타난 것처럼 최소 비용으로 필요한 특허를 확보하는 동시에 분쟁 리스크를 제거하는 치밀한 특허 매입 및 매각 전략을 구사한다.)



특허경영 교과서,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 회장은 세계 최고의 부자다. ‘지식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도 벌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예측을 현실로 보여준 셈이다.


실제로 MS는 특허 등록과 매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총 2만여 건 특허를 출원 및 등록했다. 경쟁사인 구글(8,173건)과 애플(8,867건)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치다.


최근 MS는 통신 및 스마트폰 제조기업 M&A를 통해 모바일 특허 포트폴리오 강화에 주력한다. 과거에는 PC 관련 소프트웨어기업이 주를 이뤘으나 2000년 중반부터 텔미네트웍스(Tellme Networks, 2007), 댄저(Danger, 2008) 등 네트워크 관련 기업들을 사들였다. 이후 MS는 스카이프(Skype, 2011), 노키아(Nokia, 2013~2014) 등 통신 및 스마트폰 제조기업을 집중적으로 인수했다.


MS가 구사하는 치밀한 특허 매입 및 매각 전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아메리칸 온라인(AOL)’을 통한 특허 확보 전략이 대표적인 사례다. MS는 AOL로부터 925여건의 특허를 인수했다. 주로 검색, SNS 등 모바일 관련 특허가 대부분이다.

MS는 925여개 AOL 특허 가운데 275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페이스북에 재매각했다. 동시에 MS와 페이스북과 AOL 특허 관련 크로스 라이선스를 체결했다. 최소 비용으로 필요한 특허를 확보하는 동시에, 분쟁 리스크는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다.


이렇듯 MS가 컴퓨터가 아닌, 통신 및 모바일 기업 인수에 적극적인 것은 모바일 IP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스카이프와 노키아를 인수해 모바일 관련 특허를 6500개 이상 확보했다. MS는 M&A를 통해 모바일 특허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기업 공격에도 전략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스마트폰 제조업체들 대부분이 MS와 특허 라이선스 협약을 맺고 있다. 지난 2010년 이후 MS는 안드로이드 진영 휴대폰 업체와 30건 가량의 IP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주로 안드로이드 기반 OS와 태블릿PC 및 스마트폰 등 디바이스 관련 기술들이다. 이를 통해 MS는 안드로이드 진영으로부터 연간 2억 달러 이상의 특허 로열티를 거둬들인다. 이는 윈도폰 사업보다 5배 이상 많은 수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MS 특허가 글로벌 휴대폰 및 통신 업체들에 대한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3년간 MS 특허를 가장 많이 인용한 기업은 △아마존(Amazon) △베리즌(Verizon) △제트티이(ZTE) △화웨이(Huawai) △퀄컴(Qualcomn) △애플(Apple) △구글(Google) 등 순이다. 글로벌 기업의 특허 인용수 증가는 MS가 보유한 IP 영향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따라서 MS는 2013년에 인수한 노키아 휴대폰 부문 IP포트폴리오를 활용해 안드로이드와 애플 진영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공산이 크다. 노키아 특허도 글로벌 휴대폰 및 관련 부품업체로부터 전방위적으로 인용된다. 향후 MS와 노키아가 라이선스 비즈니스에 함께 나선다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판도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허도 글로벌 10위로 껑충


특허경영은 애플, MS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나 삼성, LG 등 첨단 분야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특허는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허경영에는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이 들어간다. 조그만 중소기업에게 특허경영이 쉽지 않은 이유다. 예산 부족과 CEO 인식 부족, 정부 지원 체계 미비 등 수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만큼 중소기업이 일궈낸 특허경영 사례는 그 자체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자 기술혁신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특허경영 성공사례로 꼽히는 중소기업이 치과용 엑스레이를 생산하는 바텍(대표 안상욱)이다. 국내 치과환자중 열의 일곱은 바텍이 개발한 엑스레이로 치료받는다. 글로벌 시장점유율도 10%(5위)에 달한다. 시장 진입 10년 만에 이런 성적표를 받아든 힘은 바로 ‘특허’였다.


지난 10년간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이 회사도 글로벌 선도기업 견제와 후발업체 모방에 시달렸다. 이에 강력한 특허를 확보해 내실을 다지고 수익을 제품 매출과 실시료에서 동시에 올리는 선진 기법을 체화했다. 2015년 기준으로 바텍이 확보한 국내외 특허는 출원 427건, 등록 123건이다. 사들인 특허도 71건에 달한다. 기술 및 제품 계약 체결은 1737억원 규모다. 전체 누적 특허실시료 수입만 122만6000달러(14억7400만원)에 이른다.


반도체 메모리 테스트 부품업체 아이에스시(대표 정영배)는 특허 매입으로 관련 시장을 장악하는 동시에 분쟁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했다. 2001년에 실리콘 러버(Silicone rubber) 방식의 테스트 소켓을 개발, 양산에 성공한 아이에스시는 보유한 500여건 특허 중 매입이 374건으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매입 특허 대부분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사들였다. 실제로 2014년에 반도체 테스트 소켓 분야 2위인 일본 JSR의 자회사를 인수하면서 원천기술까지 확보했다.


아이에스시가 운영하는 특허경영시스템은 신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단계에 걸쳐 적용된다. 제품 개발에 착수하는 동시에 특허 출원 및 매입 여부를 검토한다. 지난해는 신규 사업으로 카메라 모듈 테스트 분야를 준비하며 관련 특허 25건을 매입했다. 사업 진출과 함께 특허 출원 및 매입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지식재산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비즈니스 도구로 활용하는 기업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심지어 기업은 사라져도 특허는 남는다. 특허분쟁을 ‘재수가 없어서 당한 일’쯤으로 치부하는 기업은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꿈꾸는 기업이라면, 누구나 특허경영에 나서야 할 이유다.




<본 기사는 테크M 제39호(2016년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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