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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만에 설득력 얻은 ‘사치의 효과'
아주 오래된 사상에서 오히려 더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그렇다.
누구나 경제학의 시조라고 하면 아담 스미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보다 9년 먼저 스튜어트의 ‘정치경제학의 원리에 대한 연구(1767)’ 가 출간됐다.
경제 문제는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부분적으로 다뤘던 주제다.
하지만 독립된 저작으로 경제 문제를 포괄적으로 분석한 책은 스튜어트의 것이 처음이다.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는 사실 정도를 빼고 오늘날 스튜어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튜어트는 비운의 경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아담 스미스가 스코틀랜드 부호 가문의 개인 교사 및 대학교 교수직을 맡아 평온하고 여유롭게 살았던 것에 비해 스튜어트는 명예혁명으로 추방된 스튜어트 가문의 복권을 계획한 재커바이트의 난에 연루돼 18년 동안 대륙을 떠돌았다. 그는 이 암울한 시기를 보내며 자신의 책을 집필했다.
아담 스미스로부터 시작해서 리카아도를 거쳐 마샬로 계승된 고전파 경제학은 논리나 철학 면에서는 매력적이지만 오늘날 사회 현실에 비춰 보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오히려 스튜어트의 생각이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의 현실을 더 가깝게 설명한다.
아담 스미스에 가려진 불운의 사상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같은 매력적인 캐치프레이즈가 그에게는 없었다. 오히려 ‘사치의 효과’, ‘신용화폐의 필요성’처럼 당시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발상을 했다. 더구나 자신의 원래 사상과는 달리, 중상주의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경제적 자유와 분업의 확대에 무게를 실었던 스미스는 큰 인기를 얻고 경제학설사에서 만고의 태양으로 등극했지만, 스튜어트는 분업과 상호의존성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이상보다 현실의 모습을 더욱 강조해서 그랬는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많은 사상이 훗날 프리드리히 리스트, 존 메이너드 케인즈 등을 통해 부활했다.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무역수지는 언제나 큰 이슈다. 사람들은 무역수지 흑자에 환호하고 적자에 우울해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줄곧 적자를 보이다가 1986년에 처음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 흑자와 적자를 반복해오고 있다.
1980년대에 미국은 무역적자국으로 전락하고 일본은 무역흑자국이 되면서 양국의 자존심 싸움이 벌어졌고, 그 모습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 간에 재현되고 있다.
어느 나라든 수출 확대를 생존이 걸린 싸움으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WTO 등 무역자유화가 아무리 진전됐다 해도 어느 나라든 보호무역 수단을 일정 영역에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가시켜 국내에 보다 많은 화폐(귀금속)가 유입되는 상태를 국부의 지표라고 여기는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가 생각하는 국부는 노동의 분업과 절대 비용우위에 입각한 국제 분업으로 생산력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결코 무역거래나 자본거래를 통해 화폐가 축적됨으로써 생긴다고 보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자유무역 사상이다.
스미스는 정부의 중상주의와 보호무역 정책을 경제주체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비판했다. 그런데 정작 스미스의 책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스튜어트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스미스와 대척점에 있는 최후의 중상주의자로 매도당했다.
아마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모든 학자들이 중상주의자로 간주된 것 같고, 스튜어트가 그 대표 격으로 지목된 듯하다.
정작 스튜어트는 정부가 무역을 통제해야 한다거나 무역 흑자를 높이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는 경제의 발전단계에 맞춰 국제무역은 전혀 다른 기능과 특색을 갖는다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스미스처럼 자유무역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한 나라의 경제가 유치상업(infant trade), 외국무역(foreign trade), 내국상업(inland commerce)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한다고 봤다.
유치상업 단계란 일국의 국민이 자력에 의해 생필품을 생산하고 교환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국제무역 대신에 국내 산업을 육성하면서 대외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할 시기다. 리스트의 유치산업 보호주의가 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외국무역 단계는 국내 산업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다음, 국제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가속화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수출국의 저비용 구조 유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스미스의 자유무역이 적용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내국상업 단계는 국내 산업이 대외 경쟁력이 소멸돼 경제성장이 국내 수요에 다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단계다. 이때 과거와 같이 국내에서 근검절약으로 저비용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를 침체시킨다.
여기에서 스튜어트의 독특한 주장이 나온다. 그는 사치와 과소비를 가능하게 해야만 이 단계에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18세기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치나 과소비는 지금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정당한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 원하면 언제든지 고급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고 첨단 제품들을 소비할 수 있다.) |
“노동자, 농민도 사치 욕구 가질 수 있다”
사치와 과소비는 흔히 지식인 사이에서 자본주의의 악덕이라고 간주되고, 대중들도 정서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행동이다.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그렇다.
아마 이런 점이 ‘동감(sympathy)’과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한 스미스와 달리, 스튜어트가 비난의 대상이 됐던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맬더스도 경기 침제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지주의 소비를 권장함으로써 당시 리카아도파에게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맬더스를 계승한 케인즈는 투자지출이 침체됐을 때에는 사치든 아니든 총소비를 진작시키는 방법으로 경제를 균형으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치의 본질을 바라보는 관점은 선대의 스튜어트가 후대의 맬더스나 케인즈보다 더 현대적이었다.
맬더스는 사치라는 악역을 농민이나 노동자가 아니라 지주에게 떠넘겼다. 왜냐하면 노동자나 농민은 그 노동의 대가로 생존 수준의 임금재, 즉 생필품만을 얻으면서 비좁고 지저분한 공간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봤기 때문이다.
생필품 이상의 소비, 즉 여가를 보내고 감각과 욕구를 분출하는 소비는 불로소득자인 지주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사실 이는 당시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사고였다.
또 오늘날까지 주류 경제학 이론에서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에서 노동자는 그냥 동물인 것이다. 말을 할 줄 아는 동물 말이다.
스튜어트는 사치가 지주만의 몫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산업가의 몫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케인즈가 집계적인 총소비를 강조한 것에 비해 스튜어트는 이 여러 계급 간에 소득과 실효수요(effectual demand)가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에 초점을 뒀다.
여러 경제주체들의 사치에 대한 욕구는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종류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을 그는 근면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분명히 경제의 생산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서구 경제사에서 노동자의 사치는 20세기 이후의 현상이었다. 그들의 소비가 증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세기말부터 진행된 시장의 대규모화, 그에 따른 대량생산체제의 도입과 급속한 생산성 상승, 그리고 그에 따른 임금수준 상승 때문이었다.
1920년대 이후에는 소수 부호나 자본가만이 아니라 공장 급여 생활인들조차 대기업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미국의 시어스로벅이나 영국의 막스앤스펜서 같은 거대 유통기업이 등장하면서 대중의 소비 기회를 한껏 확대할 수 있었다.
18세기 유럽 사회에서 사치는 단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 시절에 이미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그들의 욕구(wants)와 선호에 기반을 두고 생필품 이상의 소비를 해야만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봤다는 사실은 놀랍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일용직 18세기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치나 과소비는 지금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정당한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 원하면 언제든지 고급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고 첨단 제품들을 소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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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 사회에서 사치는
단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 시절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생필품 이상의 소비를 해야만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노동자조차 뷔페에서 언제든지 전 세계의 진미를 누릴 수 있고, 원하면 고급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다. 모바일 기기, 사물인터넷(IoT) 등 과거 공상으로나 가능했던 첨단제품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을 사치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허용된 정당한 소비다. 그리고 이것들이 경제성장을 견인한다.
오늘날 국가간 무역전쟁은 사실상 전 세계 모든 소비계층의 무한한 욕구를 개발하고 쟁탈하려는 싸움이다. 국가 구별은 무의미하고 전 세계가 스튜어트가 말했던 ‘일국’처럼 됐다.
벤처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단지 저렴한 생산비용을 무기로 마진을 얹어 지속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오직 고객의 지불 의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탁월한 속성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저렴한 생산비에 저렴한 가격은 단지 그 중 한 요소일 뿐이다. 또 이들 계층의 소득은 모두 상호 순환하면서 의존한다.
아담 스미스 이래 가치와 생산의 원천을 생산비에 뒀던 경제학 대신에 비용과 소비 욕구 간 상호의존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던 스튜어트의 경제학이 자리를 잡았다면 이후 경제학의 역사도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상적 논리보다 현실의 모습에 더욱 주목했던 그의 사상은 신용화폐 사상에서도 나타난다.
시대를 앞선 신용화폐 구상
스튜어트는 화폐가 생산활동에 중립적이라는 견해를 일찍이 부정했다. 후대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오히려 화폐가 중립적이라는 견해로 퇴화했다.
그들은 화폐량 증가가 단지 물가만을 상승시킨다거나 생산 활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저 거래의 매개체에 불과하다고 봤다.
일국의 생산을 증가시키려면 소비 시에 지불 가능한 수단으로 화폐가 충분히 공급돼 있어야 한다. 스튜어트는 유통 전반에 걸쳐 귀금속 대신 은행권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는 반드시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과감히 주장했다. 모든 상거래가 반드시 주화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거래에 필요한 것은 신용이지 결코 금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용이란 거래 상대방이 계약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에서 나온다.
그의 눈에 소비활동도 사치품 욕구에 바탕을 둔 심리였던 것처럼, 통화정책도 지불수단이 통용될 것에 대한 기대심리의 문제였다. 그래서 위정자는 통화량 자체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심리를 관리해야 하는 존재라고 봤다.
물론 은행권 남발은 거품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미 유럽 사회는 18세기 초에 존 로의 미시시피 주식 투기 사태에서 실체 없는 은행권의 폐해를 겪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은행권의 신용을 적절히 관리할 수만 있다면,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튜어트의 화폐 사상은 훗날 케인즈가 부활시켰다. 또한 슘페터는 신용팽창이야말로 모험적인 기업가 활동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달러 금태환제가 1960년대에 사실상 폐기되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은행권과 신용화폐가 일반화된 것을 감안하면, 스튜어트의 화폐사상은 고전파에 비해 시대를 한참 앞서간 것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있을 수 없다지만, 만약 스미스로부터 리카아도, 마샬로 이어지는 전통 대신에 스튜어트의 사상이 주류가 됐다면 이상보다 현실을, 추상화된 논리보다 생생한 현실을, 부분에서만 통하는 설명보다 전체 안에서 이뤄지는 상호관계에 대한 통찰을 더욱 중시하는 경제학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제임스 데넘 스튜어트(Sir James Denham-Steuart, 1712~1790).
스코틀랜드 에딘버그 태생의 법률가이자 사상가. 아담 스미스와 더불어 초기 경제학 사상을 형성한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대표작으로 ‘정치경제학의 원리에 대한 연구, 1767)’가 있다. 아담 스미스의 유명세에 가려 그의 사상은 잊혀졌지만, 마르크스는 단순히 경제주체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높이 평가했고, 훗날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존 메이너드 케인즈 등이 그의 사상을 계승해 보다 현실 적합성이 높은 학설을 개발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37호(2016년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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