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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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지 못했던 포켓몬고의 성공요인
(나이앤틱이 7월 출시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AR 게임 포켓몬고) |
[테크M = 연세대 UX랩 인지공학스퀘어(최재형, 조광수)]
“앗, 저기 망냐뇽이 나타났다!”라고 누군가 소리 지른다. 그러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포켓몬고를 즐기고 있던 수천 명의 무리가 동시에 달려든다. 이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 바인과 유튜브에서 장난 비디오로 일약 인터넷 스타가 된 폴 로건이 장난으로 센트럴파크에서 포켓몬고의 희귀 캐릭터인 ‘망냐뇽(Dragonite)’이 나타났다고 소리지르자 일어난 일이다.
이런 일은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포켓몬고가 정식 서비스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시스템상의 문제로 거의 유일하게 플레이가 가능하게 된 속초시에는 포켓몬고를 즐기러 많은 젊은이가 몰려들었다.
1990년대와 새로운 밀레니엄을 경험한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즐겨봤을 만한 닌텐도 ‘게임보이’ 속의 요괴들이 증강현실(AR)을 통해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는 수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에 이끌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요괴들을 잡는 것을 넘어 게임 산업과 인터넷 산업에도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연관된 주식시장까지도 흔들어 놓고 있다. 포켓몬고라는 단 하나의 AR 모바일 게임이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포켓몬고의 게임방식을 보자. 게임 플레이어는 포켓몬 트레이너가 돼 실제 공간을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포획하거나, 특정 장소에 지정된 ‘포케스톱’이라 불리는 곳에서 포켓볼과 알을 획득한다. 포켓몬 트레이너는 포켓볼로 포켓몬을 잡고, 포켓몬을 성장시키고 진화시키면서 전투력을 높인다.
아울러 트레이너는 포켓몬 체육관에서 다른 트레이너의 포켓몬과 배틀을 진행하며 쟁탈하거나, 자신이 선택한 팀에 속해 방어전을 벌인다. 체육관 방어에 성공할 경우에는 게임 내 현금성 아이템인 ‘포케코인’을 지급받아 게임을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팀 경쟁체제는 포켓몬의 오리지널 콘텐츠와 포켓몬에 AR를 구현한 나이앤틱의 노하우가 적용된 것이다. 나이앤틱의 위치 기반 게임 ‘인그레스(Ingress)’처럼 포켓몬고에서는 트레이너를 레드, 블루, 옐로 등 총 3개의 팀으로 진영을 나눠 팀 간 경쟁을 유도하기도 하고 팀 내 협동을 유도해 트레이너들이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 포켓몬고는 인그레스의 메달 시스템과 유사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인그레스의 메달 시스템은 특정한 미션을 수행했을 경우 주어지는 보상인데, 이는 개인적인 성취감을 유도해 사용자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인터넷 스타 폴 로건이 포켓몬고 출시 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희귀 캐릭터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르며 장난을 친 후 소동이 벌어졌다.) |
포켓몬고에는 나이앤틱의 AR 기술이 적용됐다. 스마트폰의 GPS, 자이로센서, 카메라로 받아온 위치정보와 방향정보, 시각정보를 기반으로 게임 그래픽을 일치(align)시켜 그래픽 합성을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AR 기술은 수년 전 부터 여러 게임과 서비스에 사용됐다. 이미 2010년 우리나라에서는 KT가 ‘캐치캐치'를 출시했고 일본에선 ‘아이버터플라이’라는 서비스가 나왔다. 이들은 포켓몬고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스마트폰으로 가상의 몬스터를 잡는다. 그러면 사용자는 통신사 포인트나 할인쿠폰 등의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사용자는 이러한 현금성 보상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사용자가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
이 시기의 AR 서비스나 게임은 사용자들의 단기적인 흥미를 이끌었지만, 사용자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뚜렷한 성공사례를 남기지 못했다. 독일 파사우대학에서 AR를 연구한 그루버트 교수는 사용자들이 AR 서비스에 대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실제로 짧은 시간동안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포켓몬고의 성공으로 다시 AR 기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게임은 과거의 AR 서비스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
포켓몬고의 핵심 매력, 포켓몬스터 콘텐츠
포켓몬고의 성공은 AR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포켓몬스터 게임 콘텐츠 자체가 게임의 핵심 매력이었다. 포켓몬스터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게임 사용자가 포켓몬 트레이너가 돼 게임 속의 세계를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수집하고, 다른 트레이너들과 대결을 하는 등의 모험을 통해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내용이다.
20여 년 전 닌텐도의 게임으로 시작한 포켓몬은 만화, 애니메이션, 트레이딩 카드 게임, 그리고 캐릭터 상품까지 전 세계 어린이에게 깊이 파고든 콘텐츠다. 포켓몬을 개발한 티자리 사토시는 어린 시절 곤충 채집을 즐겨하던 기억을 살려 포켓몬 캐릭터들이 어디서든 등장하고 채집할 수 있는 곤충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콘셉트를 제시했다.
또 스마트폰이 발전하지 않았던 1990년대에도 이미 포켓몬 게임에는 케이블을 통해 친구들과 캐릭터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랙션 콘셉트가 존재했다.
포켓몬은 이미 현실공간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인터랙션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AR 기술의 맥락과 부합하는 콘텐츠였던 것이다. 포켓몬고는 기존 포켓몬스터 게임이 가진 가치를 현재의 AR로 구현해 유년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사용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들을 다시 현실 세계의 모험으로 끌어들였다.
인그레스의 노하우가 녹아든 포켓몬고
포켓몬고에는 AR의 인터랙션을 세밀하게 완성할 수 있는 노하우가 녹아들어있다. 나이앤틱은 2010년 구글의 사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AR 게임과 서비스를 제작해온 회사이다.
나이앤틱은 인그레스라는 위치 기반 AR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검증된 노하우를 포켓몬고에 그대로 녹여 냈다. 팀 경쟁이나 메달 시스템처럼 사용자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는 인그레스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작동한 게임 시스템이다.
또 존 행키 나이앤틱 최고경영자(CEO)의 말에 따르면, 인그레스에서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등록한 위치정보를 활용해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를 파악했고, 그 곳을 체육관이나 포케스톱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포켓몬고의 콘텐츠는 낯선 장소가 아닌, 사용자들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녹아들 수 있었다.
포켓몬고의 성공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콘텐츠와 그것을 즐기는 맥락이 AR의 개념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뿐만 아니라 콘텐츠와 플레이어의 인터랙션을 구성할 때 위치기반 AR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해온 나이앤틱의 노하우가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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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자체보다는 어떻게 기술을 사용하고 콘텐츠에 접목해
사용자에게 가치를 선사할지 고민하는 것이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고 좋은 상품을 만드는 길이다.
‘팔리는 상품’ 만드는 닌텐도의 철학
매력적인 콘텐츠와 새로울 것이 없는 기술의 조합으로 다시금 팔리는 게임을 만든 이면에는 역시나 닌텐도의 철학이 있다.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는 닌텐도는 사실 게임 역사상 엄청난 발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닌텐도의 주역 중 한명인 요코이 군페이는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기술보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기술을 다른 분야에 적용해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게임보이가 그랬고, ‘위’가 그랬다. 기술면에서 경쟁사보다 떨어지지만 콘텐츠의 활용과 흔한 기술의 절묘한 조합을 통해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 온 것이다.
지금의 포켓몬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수년 전부터 흔한 기술의 영역으로 접어든 AR 기술에 포켓몬이라는 콘텐츠를 붙였을 뿐이다. 결과는 또 하나의 팔리는 상품이었다. 과거의 훌륭했던 AR 기술은 사람들의 단기적인 흥미까지는 유발했지만 지속적인 사용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팔리는 상품이 되지 못 한 것이다.
그러나 포켓몬고는 시대가 지난 기술에 콘텐츠를 잘 녹여냈고, 사용자들은 기꺼이 AR를 통해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모험의 서사에 다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포켓몬고는 이미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콘텐츠와 노하우가 쌓여있는 기술, 그리고 이를 잘 어우를 줄 아는 철학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 사용자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선사해 성공한 사례다. 기술 자체보다는 어떻게 기술을 사용하고 콘텐츠에 접목해 사용자에게 가치를 선사할지 고민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고 좋은 상품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한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1호(2016년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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