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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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인공지능]구상은 사람이 작품은 인공지능이
“여기서 저는 어떤 색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데이터 시각화 수업을 하다보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컴퓨터공학이나 통계를 전공한 사람, 시각이나 영상 디자인을 하는 사람, 또 데이터를 이용한 순수 예술 작업을 생각하는 사람 등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이 온다.
이 중 프로그래밍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컴퓨터 언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시각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종종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한다.
색의 선택. 솔직히 이것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의미 없이 선택한다는 것은 아니다. 계획한 시각화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 기준을 가지고 고민 끝에 선택하지만 딱히 누군가에게 설명할 만한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그때그때 다르니 알아서하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다. 기껏해야 ‘자신의 경험과 사회통념상 이해될 만한 적정 수준에서’라는 억지에 가까운 대답으로 대충 둘러대고 만다.
색의 선택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는 이렇게, 저런 경우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법칙을 정리한 교과서적인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마음 편히 따를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공인된 표라도 있다면 더욱 좋다. 고민의 괴로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창작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데이터를 학습, 시스템 상 최적의 결과를 찾아주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그들의 창작적 고충을 해결해 줄 아주 좋은 묘책이 될지 모른다. 그것도 색이나 스타일을 추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시스템이 직접 결정하고 때에 따라서는 채색까지 해주면서 그들의 창작활동을 보다 쉽고 빠르게 만들어 준다면 말이다.
그런데, 과연 창작에서의 자동화 시스템이 좋기만 한 것일까?
창작 과정에 개입한 인공지능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미뤄 두고 보자면, 인공지능이 우리의 창작활동에 점점 깊숙이 들어오고 있음이 확실하다.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들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 쉽고 빠르게 압축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 손으로 수천 장을 그리던 전통 2D 애니메이션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최근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만화 제작에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적용한 시도를 했다. 채이너(Chainer) 프레임워크를 사용한 패인트채이너(PaintsChainers)는 이미지와 소리 인식에 많이 쓰이는 컨볼루션 뉴럴 네트워크(CNN) 알고리즘을 이용, 이미 완성된 스케치의 형태를 인식하고 가장 적절한 색으로 채색해준다.
패인트채이너의 온라인 데모를 살펴보면 완전 자동화된 채색 시스템과 함께 사용자가 특정 색상을 선택하면 그에 어울리는 색상조합과 채색을 해주는 반자동 시스템을 실험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딥러닝 알고리즘은 창작 과정보다는 결과물의 다양한 변형과 확장에 적용됐다. 렘브란트 그림을 분석해 렘브란트 화풍을 재탄생 시킨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나 피카소, 모네, 반 고흐 등 유명 화가의 화풍을 포토샵의 필터처럼 이미지에 적용할 수 있는 ‘스타일트랜스퍼(styletransfer)’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노력하고 연습해야 얻을 수 있는 유명화가의 스타일과 화풍을 자신의 작업물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결과물의 재창조에 중심을 뒀다.
하지만 패인트채이너는 앞선 사례들과는 다르게 창작 과정의 한 부분을 기계학습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창작자가 몇 개의 키워드나 간단한 스케치만 입력하면 나머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알아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완성해 주는 기술이 앞으로 더 진화한다면 우리의 창작과정은 지금보다 몇 배는 빠르고 간단하게 변할 것이다. 그리고 창작을 위한 고민의 순간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고 창작을 위한 연습과 훈련은 쉽게 건너뛸지 모른다.
채색, 스케치를 인공지능으로
창작의 과정을 기계학습으로 대체하는 또 다른 예로 원화 그리는 과정을 단순화시키는 인공지능 연구가 있다. 2016년 시그래프 행사에서 발표한 ‘스케치 심플리피케이션(Sketch Simplification)’ 연구는 패인트채이너처럼 CNN 기술을 이용한다. 완성되지 않은 대강의 스케치를 입력 데이터로 사용하면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 기술의 장점은 원본이미지의 해상도를 유지한 채 이미지 속 스케치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의 특징 인식에 효과적인 CNN 덕분에 기존의 다른 소프트웨어에서 제공하는 자동 선 그리기(line tracer) 기능보다 훨씬 원본이미지 속 특징을 잘 완성할 수 있다.
스케치 심플리피케이션 같은 기계학습이 더 발전해 실용화된다면 이미 마스터가 된 작가가 모든 그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지 않고 초기의 밑그림만 잡아주면 나머지는 기계가 완성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마스터는 자신의 노동집약적 시간을 줄여 본질적인 창작에 더 힘을 쏟을 수도 있고, 이전처럼 문하생을 두고 작업을 완성하지 않아도 되므로 시간과 비용 모두 줄이게 될 것이다.
좀 더 경제적인 측면에서 창작환경의 인공지능을 본다면 학습을 통한 자동화 시스템은 분명 득이 많다. 모든 창작 작업을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게 아니라 기계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더 빠르고 저렴한 가격에 창작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반 로고디자인 서비스인 로고조이(Logojoy)는 사용자가 선호하는 로고 스타일과 색상 배합, 사용자의 회사 이름과 슬로건, 원하는 도안을 선택하면 이미 학습된 시스템에서 가장 적합한 서체와 디자인을 만들어 제공한다. 로고조이가 말하는 특징은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는 듯한 경험을 주며 결과물을 완성한다’이다.
실제로 이용자들은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로고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업에 적합한 로고를 만들기 위해 전문 디자인 회사에 의뢰하기 번거로운 중소기업 혹은 소규모 상인들은 로고조이처럼 쉽고 빠르고 저렴한 서비스에 더 만족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고민과 생각으로 창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사라져 가겠지만.
창작에 개입한 인공지능의 영향은
스타일을 학습하고 이미지를 인식해 창작과정에 개입하는 인공지능은 창작시간과 비용을 줄여주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인간에게, 그리고 창작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이러니 하지만 창작은 훈련의 결과다. 더 나아지기 위해, 학습을 위해 훈련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는 생각하고 고민하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미술을 시작하면 첫 훈련이 ‘선 그리기’인데, 거의 한 달을 선만 그리는 작업을 한다. 이 단순 훈련은 단지 선을 곧고 잘 그리기 위함만이 아니라 연필이 주는 질감, 종이가 주는 느낌을 스스로 경험하기 위한 것이 있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다른 창작활동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 과정 같지만 그 과정의 반복 속에서 창작자들은 세세한 디테일, 놓치기 쉬운 숨은 작은 것들을 찾아내고 다듬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게 창작자들은 창작과정의 순간마다 지금이 최선인지, 최선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자신 안의 질문들을 하나씩 완성해 나간다. 이 때문에 우리는 창작자들, 그중에서도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작업에 가치를 부여해 온 것이다.
점점 자동화 되어가는 환경에서는 이전과 같은 고민과 훈련의 시간은 줄어들 듯 하다.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기계 학습으로 진화된 시스템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며 그로 인해 창작자들은 자기반성의 기회 혹은 더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질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타인과의 공동작업 역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단절되고 가벼워지는 창작환경은 어느 누구도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의 개입으로 편리해진 창작환경에서 얻는 경제적, 시간적 혜택을 어떻게 잘 쓸 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무리인 인공지능 환경에서, 달라지는 창작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자동화 환경으로 단순해진 창작 과정에서 창작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가치를 이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마치 ‘스케치 심플리케이션’으로 문하생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는 만화가가 여유 시간에 스토리에 대해서 더 고민하듯이 말이다.
인간은 생각을 멈추면 진화를 멈춘다. 2006년 상영된 ‘이디오크래시’란 영화에서는 지능이 퇴화한 인간들만 사는 미래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B급 코미디 영화라고 하기에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는 생각을 멈추고 진화를 거부한 사람들이 미래도시에서 단순하고 쉽게, 그러나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삶이 퇴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우리보다 가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생각을 멈춘다는 건 슬픈 일이다.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건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창작적 본능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디 기계 환경으로 주어진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큰 고민에 쏟아 부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인간의 창작활동에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7호(2017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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