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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긴 그림자… 케인즈라면?
위대한 인물을 따르는 후손들이 오히려 그의 뜻과 반대되는 세계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케인즈는 세기의 명저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1936)’의 제일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마무리 지은 바 있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은 그것이 옳을 때나 틀릴 때나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밖에 별로 없는 것이다. 자신의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돼 있다고 믿는 실무자들도 이미 고인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인 것이 보통이다.
허공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권좌에 앉아 있는 미치광이들도 그들의 미친 생각을 수년 전의 어떤 학구적인 잡문으로부터 빼내고 있는 것이다.”(조순 역, ‘개역판’, 461~462쪽)
전 세계의 수많은 케인즈 추종자들은 그들의 스승 케인즈를 그가 그토록 우려해마지 않았던 ‘이미 고인이 된 어떤 경제학자’로 전락시킨 듯한 느낌이다. 동시에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의 ‘노예’가 됐다.
정부 지출의 위력에 대한 맹목의 신앙이 그들의 가슴 한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그들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나라가 복지국가 환상과 재정 중독(fiscal alcoholism)에 빠졌다.
케인즈 경제학의 진면목
하지만 이런 현상은 사실 케인즈 본인의 유산이 아니었다. 케인즈를 이념화시킨 후대 경제학자들의 작품이었다.
케인즈가 남긴 것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일반이론’ 전체를 통틀어 정부 지출의 효과에 대한 언급이 간혹 등장하지만 그 비중은 미미할 뿐만 아니라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다.
그의 주된 논의는 경제가 발전하고 부가 축적되면서 유효수요가 부족해지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발생하지만, 이때 증가한 저축이 과소 소비를 보완할 수준의 투자로 자동적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이려는 데 주로 치중했다.
케인즈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오늘’의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 ‘낡은’ 거대 이론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오로지 ‘지금’의 해법을 찾으려 하는 정신이었다. 그가 접했던 오늘이란 자본주의 경제에서 2차 산업혁명이 극성기에 달했던 20세기 전반의 영국을 비롯한 서구 경제였다.
대량 실업과 소득 격차야말로 가장 큰 사회 문제였다. 만일 케인즈가 지금 살아있다면, 그는 오히려 비대한 정부의 폐해를 비판했을지 모른다. 동시에 그토록 정부 지출을 늘렸어도 지금까지 실업 해결에 별 효과가 없는 현실을 보고, 원인에 대한 처방 없이 미봉책만 추구하는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을 힐난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당시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스승이었던 마셜의 이론이 그다지 효험이 없다는 사실을 근본부터 반성했다. 그래서 스승이 정립했던 임금과 이자, 투자와 저축 등의 제 관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특히 그는 이전의 학자들이 소홀히 했던, 사람들의 경제 행동을 지배하는 심리적 동기를 크게 부각시켰다.
불확실성 가득한 세계가 일반적이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일반이론이라고 부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가격 조정을 통해 균형이 자동적으로 달성된다는 주장은 아주 제한된 경우에만 성립하는 ‘특수이론’이라고 보았다. 당시 주류 경제학자들이 추구했던 균형 개념은, 그들이 경제 현상을 마치 자연과학의 대상처럼 보던 데에서 기인했다.
그는 경제를 ‘기계’가 아니라 ‘사회’라고 보았다. 사회란 기계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사회는 기계처럼 정연하게 움직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한없이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20세기 후반 케인지언이라고 불렸던 인물들, 예컨대 새뮤얼슨(P.A. Samuelson, 1915~2009)이나 맨큐(N. G. Mankiw, 1958~)같은 사람들은 경제를 모종의 균형을 향해 움직이는 기계라고 보았다.
케인즈가 본 것은 사회에 내재한 불확실성이었다. 이 불확실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사람들의 지식이 지극히 제한돼 있는 데서 나온다.
옆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론이고, 당장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조차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 사이에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한다는 일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특수한 예외 사건이다. 경제 전체에 저축과 투자가 가격 조정을 통해 물 흐르듯이 적재적소에 공급된다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세상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사람들은 유동성, 즉 화폐를 소유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화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일반적 교환성을 갖춘 유일한 재화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품과 자산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될 때에는 실물 자산보다 화폐를 더욱 갖고 있고 싶어한다.
또 유효수요는 사람들이 미래의 수익을 어떻게 예상하느냐, 즉 심리적 기대 수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 예상에 따라 허리띠를 졸라맬 수도 있고 지갑을 마구 열 수도 있다. 투자를 증대시켜 봤자 미래에 추가되는 수익을 별로 기대할 수 없을 때 기업가들은 일단 화폐를 보유하려 한다.
개인도 앞으로 명목 화폐임금이 상승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 씀씀이를 좀처럼 늘리지 못한다. 물론 이런 과정에 여러 변수가 개입되면서 현상은 매우 복잡해진다. 일반이론은 소비성향과 자본의 한계효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 복잡한 심리 요인과 경제 변수 사이의 관계를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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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오늘’의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
‘낡은’ 거대 이론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오로지 ‘지금’의 해법을 찾으려 하는 정신이다.
공업화와 주식 시장에 주목
케인즈는 한 사회에 유효수요가 부족해지면 가격이 자동으로 하락해 경제가 다시 균형 상태로 항상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농수산물처럼 부패하기 쉬워 재고 유지가 어려운 경우 가격 인하를 통해 수급이 조절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스미스, 리카도, 맬더스, 밀,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밀, 생선, 포도주, 아마포 등이 사례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하지만 케인즈는 공업이 본격화된 사회를 살았다. 거기에서 그는 전혀 다른 현상을 보았다. 기업가들은 공산품에 대해 불황 시 가격 인하를 단행하기보다는 재고 보유량을 적절히 조절하는 방안을 더 선호할 것이다. 케인즈에 따르면, 수요가 부족하면 가격이 하락함으로써 수요가 다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19세기 경제학자들은 경험하기 힘들었던 거대한 변화, 즉 대중이 주식을 소유하는 현상을 목도했다. 케인즈 본인도 주식 투자를 즐겼다. 하지만 케인즈가 관심을 둔 것은 벌리(A. A. Berle, 1895-1971)와 민즈(G. Means, 1896-1988)처럼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는 아니었다. 대신에 그는 대중들이 자산을 투기적으로 재편성하는 심리와 행태에 주목했다.
만약 대중들은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즉각 그것을 매각해 화폐를 보유하려고 한다. 유동성 선호 심리다. 대중들이 주식을 보유하는 동기는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에 대한 판단보다 주가 상승을 통해 자본 이득을 실현하려는 욕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주식 가격은 시장 참가자들이 어떤 심리 속에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고, 채권이든 주식이든 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즉각 매각한 뒤 현금을 보유하려는 심리가 발동한다. 이것이 화폐에 대한 투기적 수요다.
그는 경기 변동은 대중들이 장래에 대한 낙관과 비관 가운데 어느 쪽으로 몰려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봤다. 즉 경기 변동은 단지 생산량과 물가 수준이 고저를 반복하는 실물 현상이 아니라, 사회 심리의 변화가 유발하는 현상이라고 봤다.
이런 심리적인 요인들은 케인즈 이전의 경제학자들도 언급했지만 실물 경제에 대해 부차적인 요인으로 치부됐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본의 본질도 전혀 다르게 봤다. 그는 중요한 것은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창출할 수 있는 수익에 대한 기대(expectation)라고 봤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은 오직 심리의 차원에서만 기능한다.
그러나 케인즈는 이처럼 얼어붙은 투자 심리를 회복시키는 수단으로 그 어떤 만병 통치약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케인지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하지 않았다.
자본의 한계효율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자본의 과도한 증가를 적어도 희소성이 유지되는 선까지 막는 정책, 즉 과잉 투자를 막는 정책과 소비성향을 증가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동시에 추구돼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일정량의 투자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승수 효과(mulitplier effect)를 설명할 때도 공공사업을 하나의 예로 들었을 뿐 절대적인 수단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다.
제2의 케인즈가 필요하다
케인즈의 생각은 후대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경제에 대한 안정화 정책(stabilization policy)이라는 기계적인 도식으로 전락 당했다. 게다가 케인즈를 따른다는 사람들과 통화주의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 끝에 그 연장통에는 통화량과 금리 조절 정책까지 추가됐다.
결국 경기가 불황이면 양적 확대 정책을, 호황이면 축소 정책을 취하는 것으로 경기 변동을 없앨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을 낳기까지 했다. 경제학자들은 사회를 일종의 자동 제어 기계로 보게 됐다. 그것도 그다지 완벽하지 않아서 관리자가 수시로 톱니도 직접 돌려주고 기름도 쳐주고 빠진 바퀴도 다시 달아줘야 했다.
케인즈는 당시 유행하던 수리경제학파의 분석이 경제학을 현실로부터 유리시킨 무익한 기호의 유희라고 생각했다. 사회 현상은 여러 가지 요인의 작용과 반작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결코 일도양단의 논리로 규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경제인들은 항상 자신을 둘러싼 인과관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산다. 이런 환경에서 그들 누구도 정확한 계산을 할 수는 없으며, 직관과 이성을 동시에 작동시켜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반이론이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이유도, 그 서술이 명확한 논리와 엄정한 체계를 따른 것이 아니라 복잡 미묘한 단서들이 한 없이 달린 사유 과정을 마구 풀어놓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 대가의 사상이 대부분 그렇듯 풍부한 함의와 다양한 접근으로 가득한 일반이론조차도 사회사상가, 확률이론가, 철학자, 그리고 행정가로서 그가 남긴 거대한 족적의 한 편린에 불과하다.
어쨌든 해석 가능성의 다단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반이론에서 언제든지 자본주의 경제가 만성적인 유효 수요 부족과 대량 실업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체제임을 인정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는 국가사회주의나 전제주의적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면서 그 결함을 극복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정부가 적절한 선에서 개입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능률을 희생하지 않고서 충분히 그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고전파가 주장했던 이기심이나 자유의 가치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고전파가 그렸던 세계가 달성되는 것은, 일단 체계가 자동으로 보장해주지 않는 완전고용의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해놓은 다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유주의 경제가 갖는 이 불가피한 결함에 대해 그가 제시한 절충적인 해결 방식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비판 받는 신세가 됐을 정도로 논리적 일관성이나 엄밀함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케인즈에게서 진정 배워야 할 점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자신도 말했듯이 그 어떤 위대한 고인의 학설에도 매몰되지 않고 바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찾으려 시도하는 그 자세에 있는 것이 아닐까?
존 메이너드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
1840-1921
영국 케임브리지 출생.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수학했다. 1906년에 공무원이 돼 인도부(India Office) 및 재무부에 근무하기도 했으며, 1909년에 케임브리지대의 강사 겸 회계관이 됐다.
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 재무부 수석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철학, 수학, 경제학, 사회 문제, 공연 예술 전반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지녔고 주저로 알려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 외에 ‘확률론(1921)’, ‘화폐론(1930)’, ‘평화의 경제적 귀결(1919)’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8호(2017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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