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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역사, 사람들은 왜 비타민에 열광할까
[테크M=글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선원들이 오랜 항해 중 괴혈병에 걸리는 이유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질환이 특정 영양분 결핍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영국 해군 군의관 린드(James Lind, 1716-1794)였다.
그는 괴혈병에 걸린 선원이 레몬이나 귤을 먹으면 낫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1753년 녹색 채소를 통해 괴혈병 치료가 가능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본격적인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언제든지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
오랜 세월이 지나 1906년 이후 영국의 생화학자 홉킨스(Sir Frederick Gowland Hopkins, 1861~1947), 네덜란드의 병리학자 에이크만(Christiaan Eijkman, 1858~1930) 등이 어떤 세균이 침범해서가 아니라 특정 영양성분이 결핍됨으로써 각기병 같은 질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두 사람은 그 공로로 1929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12년 폴란드의 생화학자 풍크(Casimir Funk, 1912~1967)는 새롭게 등장한 성분에 비타민(Vitam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각기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티아민(Thiamine)의 접미어 amine(질소함유 유기물)에 생명이라는 뜻의 vita를 붙인 것. 이후 e자를 생략하고 Vitamin이라는 단어가 비로소 정착하게 된다.
이후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바야흐로 비타민 연구의 전성기였다. 그 시기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비타민 C, D, K가 발견됐다.
많은 학자들이 비타민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천연 식물 등으로부터 비타민을 추출하는 효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천연오렌지에서 비타민C 1000㎎을 얻으려면 적어도 오렌지 34개가 필요했다.
지금도 천연 원료로 고가의 비타민C가 생산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높은 가격은 시장 확산에 걸림돌이 된다.
이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화학적으로 비타민을 합성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비타민이 대중화된 계기는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전신인 스위스 호프만라로슈가 1934년 합성 비타민C를 대량생산하면서 이뤄졌다. 이 제품의 상품명은 레덕손(Redoxon)이었다.
알약 형태로 거품을 내면서 물에 녹는 이 제품은 실험실 바깥으로 나와 처음 대량생산된 제품이 대성공을 거둔 흔치 않은 사례가 됐다.
레덕손 상표는 2004년 독일의 제약회사인 바이엘이 인수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엘의 상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호프만라로슈의 기회 발견과 도전
이 제품의 개발을 주도한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화학자 타도이츠 라이히슈타인(Tadeusz Reichstein, 1897~1996)이었다. 그는 1933년 포도당 100g에서 비타민C 40g을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듬해 호프만라로슈는 라이히슈타인의 제법 특허를 사들였고 대량생산을 통한 사업화에 착수했다.
그가 찾아낸 방법은 오늘날까지 라이히슈타인 제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라이히슈타인은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는데, 수상 이유는 애석하게도 비타민의 제조법을 개발한 공로가 아니라 부신피질 호르몬에 대한 연구였다.
비슷한 시기 새로운 비타민C 제법을 발견한 기요르기는 그 공로로 1937년 노벨상을 받았다.
라이히슈타인의 방식은 박테리아를 이용한 발효 방법으로 제법 자체는 매우 혐오감을 줄 수 있다. 다른 연구자들이 찾아낸 여러 방식, 예컨대 헝가리의 알베르트 첸트-기요르기(Albert Szent-Gyœrgyi, 1893~1986)가 발견한 고추에서 비타민C를 추출하는 방식, 영국의 노만 하워스(Sir Norman Haworth, 1883~1950)가 찾아낸 또 다른 방식을 누르고 합성 비타민C 대량생산 기술의 주류가 됐다.
그 이유는 호프만라로슈라는 거대 제약회사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대량생산 및 마케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호프만라로슈 창업은 1896년에 이뤄졌다. 당시 약관 28세의 프리츠 호프만라로슈(Fritz Hoffmann-LaRoche, 1868~1920)는 의약품의 대량생산이야말로 인류를 질병에서 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비전을 품고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몇 가지 약품을 개발하다가 1898년에 출시한, 처방이 필요 없는 감기약 시롤린(Sirolin)이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사업은 반석을 마련하는 듯 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경영난을 겪었고, 설상가상 창업가인 호프만이 1920년에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호프만의 뒤를 이어, 회사 설립 당시부터 함께 일해 온 바렐(Emil Christopher Barell, 1874~1953)이 최고경영자에 취임했다. 바렐은 비타민 사업화에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
미국 뉴욕에 지사를 내고 뉴저지 주 너틀리(Nutley)에 공장을 건립했다. 라이히슈타인의 특허를 사들인 후 대량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1934년 5월에 미국 특허청에 레덕손 상표 등록도 마쳤다. 비타민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회사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고 이후 다양한 제약 및 보건 의료 사업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이후 로슈의 성공을 지켜본 수많은 제약사들이 비타민B, D 등 다양한 비타민 사업에 뛰어들었다.
1940년대 이후, 식사만으로는 건강을 유지하기에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각종 매체와 생활정보지에 영양보충제 광고가 급격히 늘어났다.
일상에서 비타민을 보충하지 않으면 뭔가 위기가 닥칠 듯한 우려가 팽배하면서 비타마니아(vitamania)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짧은 기간 사업화 성공 사례
흔히 과학 연구에 기반을 둔 혁신은 사업화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알려져 있다.
실험 단계에서 발견된 특성이 대량생산 과정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고, 사업화를 위한 기반 기술이나 원재료, 부품, 지식이 미비할 수도 있으며, 고객의 실제 욕구와 불일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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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의 발견과 사업화는 미래의 식품 생산이 토지와 기후라는 자연의 제약을 넘어 엔지니어링의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미한 단초를 암시한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타민이야말로 1910년대 이후 학계의 연구 결과를 제약사가 집중 투자와 광고를 통해 짧은 기간에 사업화하는 데 성공한 희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는 호프만라로슈의 비타민 사업화를 총력선점전략(fustest with the mostest)을 통한 혁신 성공의 대표 사례로 인정했다.
이는 불확실한 시장에서 작게 시작해서 점점 피드백을 통해 전략을 개선하고 기회를 확대해가는 유형의 혁신과 정반대편에 있는, 과감한 혁신 전략이다.
그만큼 실패 위험도 높지만, 일단 성공하면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전략이다.
지금까지도 각종 비타민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특히 비타민C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제 100만인의 일상에서 필수 영양보충제가 된 이상, 더욱이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믿음’이 돼버린 이상, 약도 아니고 음식도 아닌 이 특이한 물질을 다루는 산업은 이변이 없는 한 지속될 것 같다.
만약 비타민C의 존재가 좀 더 일찍 알려졌더라면 세계사의 향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괴혈병 때문에 항상 고통 받았던 모든 탐험대의 성과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젤란은 괴혈병 때문에 필리핀에 정박할 필요 없이 항해를 계속해서 향료 시장을 독점하고 최초의 세계 일주자라는 명예를 얻었을 것이다.
마젤란의 도움으로 스페인이 향료 무역을 독점했다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설립되지 않았을 것이고, 인도네시아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됐을 수도 있다.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얀스존 타스만이 선원들의 괴혈병 예방법을 알았더라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뒤늦게 남태평양에 진출한 영국이 차지할 수 있는 영토는 현저히 줄어들고 영국이 훗날 세계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난 세기 비타민의 발견과 사업화는 천연 식단만으로는 영양소 균형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시켰다는 의미 이상으로, 미래의 식품 생산이 토지와 기후라는 자연의 제약을 넘어 결국 엔지니어링의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미한 단초를 암시한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아주 먼 미래에는 단지 먹기 위한 목적으로 뭔가를 ‘재배’하거나 ‘사육’한다는 개념은 조금씩 줄어들지도 모른다. 단지 ‘합성’된, 그러면서도 더욱 균형 잡힌 먹을거리가 우리 삶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비타민이 발견된 뒤 약 100년이 지난 요즘, 인공 고기 내지 인공 계란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또 다른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본 기사는 테크M 제55호(2017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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